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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도 한국 소설 문학의 큰 흐름과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상 작품을 포함한 7편의 우수작상이 지닌 각기 다양한 작품세계가 이 한 권에 펼쳐져 있다. 1994년 제1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최윤 씨의 <하나코는 없다>가 선정되었다. 최윤 씨의 <하나코는 없다>는 집단의 시선 속에서 소외되고 증발되어 버린 한 여성의 존재 상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도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인간의 익명성(匿名性)을 다시 한 번 날카롭게 확인하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관념적인 소설이다. 관념에 대해 관념으로 맞서기, 적어도 굳은 관념에 대해 의심하고 그 관념에 작은 틈을 내는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작가 최윤, 그는 관념 소설이 빈약한 우리 문학 풍토에 때맞추어 나타난, 새롭고 풍요로운 소설의 텃밭을 가꾸어갈 뛰어난 작가다.
대상수상작 최윤 <하나코는 없다>
우수상 수상작 공선옥 <우리 생애의 꽃> 공지영 <꿈> 김문수 <온천 가는 길에> 김영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경숙 <빈집> 윤대녕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이승우 <미궁에 대한 추측>

등저 : 최윤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최현무이다. 1966년 경기여중과 1969년 경기여고를 거쳐 1972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교지 편집을 했으며, 1976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78년 첫 평론 「소설의 의미구조분석」을 『문학사상』에 발표하고, 이후 5년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83년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다. 『벙어리 창(唱)』(1989) 『아버지 감시』(1990) 『속삭임, 속삭임』(1993) 등은 이데올로기의 화해를,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 『회색 눈사람』(1992)은 시대적 아픔을, 『한여름 낮의 꿈』(1989)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푸른 기차』(1994) 『하나코는 없다』(1994) 등은 관념적인 삶의 의미를 다룬 작품으로서 그의 소설은 다분히 관념과 지성으로 절제되어 남성적인 무게를 지닌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소설은 언어에 대한 탐구이면서 현실에 대한 질문이고, 그 질문의 방식을 또다른 방식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를 향해 여러 겹의 책읽기를 즐기라고 권유한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작은 부분들을 여러 층으로 쪼개서 그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가 완성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소설들을 즐기는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의식 속에서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소설의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 박혀서 보석처럼 빛나는 실존에 대한 통찰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화자는 그 이야기 속의 상황과 운명을 이끌어가는 영웅적 능동성을 지니기보다는, 그 소설을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관찰자적 화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바로 그 화자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할 때도 그 어조는 섬뜩하리만큼 냉정하다. 그 같은 냉정함은 현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최윤 특유의 수사학에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길어올려진 미학의 위엄을 보여준다.
한편 최윤이 전통적 기법의 틀을 벗어나 다채로운 소설 문법을 시도하는 작가이면서도 유종호, 이어령 등의 대가급 평론가들로부터 이상적 단편소설의 전범으로 불리는 작품을 내놓은 것은 그의 소설론이 전통과 실험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문학교수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하며, 이청준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등 번역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1992년 『회색 눈사람』으로 제2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하나코는 없다』로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작품집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92) 『속삭임, 속삭임』(1994) 『겨울, 아틀란티스』(1996) 등이 있고,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1994)이 있다.

하나코. 그것은 그들만의 암호였다. 한 여자를 지칭하기 위한 그들 사이의 암호. 한 여자가 있었다. 물론 그 여자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그드의 도시적 감상에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암호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코 앞에서 그녀를 별명으로 부른 적도 없다. 그들 끼리만 모였을 때, 지루하고 전망없는 하루 저녁 술자리에서 그녀를 지칭하느라 우연히 튀어나온 농담조의 이 별명이 암호가 되었다. ~ 그녀는 코가 아주 예뻤다. 그녀의 용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어떤 분위기를 전달하는 반면, 그녀의 코 하나는 정말 예뻤다.--- p.14-15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변화를 지켜 보고 있는 하나코와 그 여자 친구에 대해 공연히 적개심이 솟았다. 모두들 사회 생활을 이삼 년 한 뒤에 생긴, 애써 감추어 두었던 허탈감이 연휴의 여행중에 무장 해제되었던 걸까. 아니면 삶의 피곤과 술과 여행이 기묘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 돌이킬 수 없는 불안감.--- p.36,---pp.18-24
그날의 밤은, 생소해서 더욱 어두워 보이는 이 여행지의 밤만큼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둠을 등지고 무릎을 오므려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태평스러운 낮은 휘파람을 부르면서 누군가가 복도 쪽으로 빨리 지나갔다. 아래쪽의 좌석에서는 요란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침대는 여전히 세개가 비어있었다. 로마에 내리자마자 서울에 전화를 걸리라. 그의 마음은 예전에 비해 한치도 바뀐 것이 없다고. 당신의 자리가 너무도 비어 있었노라고. 꼭 한 번 아이를 데리고 베네치아에 같이 오자고.--- p.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