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함박눈/김혜순

헤븐드림 2017. 12. 16. 01:46







함박눈 / 김혜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말은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순간, 폭설이 쏟아졌다


그것도 모르고 땅에 계신 우리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 아 아 아버지 

목청껏 간구했다

그러나 아무 목소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달되지 않았다


폭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칼을 질렀다그 다음 폭설이 우리와 우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두터운 잠과도 같은 금을 그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망우리, 마아앙 우리같이 가자 같이 가자목청껏 외쳤지만 아무도 멈춰서지 않았다자꾸만 두껍게 더 두껍게 흰 금이 가로세로 그어지고 서로가 사막처럼 머얼어졌다


하늘에 있던 나와 땅에 있던 나마저도

머얼어졌다, 꿈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