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책읽기

이방인 /알베르 카뮈

헤븐드림 2010. 1. 28. 01:47

 

 

 
 
지은이 : 알베르 카뮈 / 김병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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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초등학교 시절 L.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으며,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이 보이고 있다.

 1942년 7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로 살다가, 살인죄를 범하고 사형을 선고 받은 사나이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부조리성과 반항의 의욕을 철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시지프의 신화(神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정의와 진리 및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독자적인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그 악성과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1956년 <전락>을 발표하여 샤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동안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해서도, 알제리에 거주하는 친척과 친지들을 생각하여 정치적 발언을 일체 삼가는 태도를 고수하였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최초의 본격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나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쳤다.

이해와 감상2

 1942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처녀작이자 출세작.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 친구인 마리와 해수욕을 하고 희극영화를 본다. 그리고 밤에는 마리와 정사(情事)를 가진다.

며칠 뒤 일요일에는 해변에서 우연히 친구 레이몽과 다투고 있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그는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햇빛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재판관, 검사, 변호사는 물론,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내고 사형이 선고된다.

 그는 재판과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며, 속죄의 기도를 거부하고 고독한 이방인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린다. 감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별과 하늘과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그가 인생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처형되는 날은 많은 군중이 밀려들 것을 기대하며 이 소설은 끝난다.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뫼르소의 행동을 그려, 근원적인 인생의 부조리를 나타낸 작품이다. 앙드레 말로에 의해 발간되었다. (출처 : 한메디지털백과사전)

이해와 감상3

 소설 '이방인'은 뫼르소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이 세계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부조리에 눈을 뜬 뫼르소는 허망을 경험하게 되어 허무주의자가 되고,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했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생의 거부가 아닌 수용의 철학을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이 부조리의 세계를 거부했다면 우리는 희망의 부재만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조리한 이 사회를 받아들인 '뫼르소'에 의해 삶이란 결국 허무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할만한 가치 있는 사회로 인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