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퀴즈

예레미야 애가(2): 애가서 3-5장

헤븐드림 2016. 9. 29. 00:34



3 장 : 절망 속에서 소망을 바라보며
  애가서 1,2장이 주전 597년의 예루살렘 함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애가서 3장은 주전 586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장에서 애가서 기자는 예루살렘 멸망과 유대인 포로 사건 후에 일어난 유다의 혼란과 기근과 정치적인 압박을 묘사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있다. 애가서 3장은 1-2장과 달리 히브리어 알파벳(22개) 한 개마다 3개의 절을 배치하여 총 66개의 절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최후의 예루살렘 멸망을 슬퍼하는 저자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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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징계 받는 자의 고백(3:1-18)

  애가서 기자는 멸망한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여호와께 진노의 매를 맞아 고난당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 매를 맞고 또 맞아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기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빠져 나갈 수 없는 어두운 감옥에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채로 던져진 죄수와 같았다. 그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나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시고
  하루 종일 손을 들어 나를 때리고 또 때리셨으며,
  내 살과 피부를 약하게 하시고 내 뼈를 꺾으셨나이다.
  주님께서 나를 슬픔과 아픔으로 에워싸셨고,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어둠 속에 앉히셨으며,
  빠져 나갈 수 없는 곳에 가두어 두시고
  무거운 쇠사슬로 얽어매셨나이다.
  내가 부르짖고 도움을 청했지만
  주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으며,
  돌로 내 앞길을 막아 내 길을 고통스럽게 하셨나이다(1-9)."

  하나님은 그에게 먹이를 노리는 곰과 사자와 같았다. 하나님은 힘센 야수(곰과 사자)가 먹이를 잡아 찢듯이 그를 찢으셨다. 이제 그는 갈기갈기 쪚겨진 가련한 짐승과 같았다. 또한 하나님은 능숙한 사냥꾼이 되어 그를 쏘아 맞히셨다. 그는 사냥꾼의 화살에 맞은 짐승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백성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당하여 모든 기력이 소진했다.,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소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자미막 소망마저 잊고 슬픔 속에 탄식하고 있었다.

 "주님은 엎드려서 기다리는 곰과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와 같습니다.
  주님은 나를 그릇된 길로 이끄셨고
  갈기갈기 찢어 쓸쓸한 곳에 두셨으며,
  나를 과녁을 삼아 활을 당기셨나이다.
  화살통에 있는 화살로 내 심장을 맞추셨으니
  내가 내 모든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면서 나를 놀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배를 쓴 것과 고통으로 채우셨나이다.
  자갈로 내 이를 깨뜨리시고 나를 재 속에 밀어 넣으셨나이다.
  이제는 나에게 평안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는 이제 행복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으며
  기력이 소진하여 여호와의 도우심에 대한 소망을 포기했나이다(10-18)."


3-2. 여호와의 자비를 의지하고 소망을 얻음(3:19-41)

* 여호와의 자비를 기억하고 소망을 회복함(19-25)
  애가서 저자는 소망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이 당하는 큰 고통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매를 맞고 슬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잇었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고 다시 소망을 찾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에게는 아직 소망이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섬기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를 드셨다가도 하고 회개하는 자녀들에게는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의 인자는 영원하며 변하지 않았고,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그러므로 애가서 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다시 소망을 발견하고 있다.

 "주님! 제가 당하는 고난과 괴로움을 기억해 주옵소서!
  제가 당하는 쓰라림과 고통을 기억해 주옵소서!
  제가 모든 것을 기억하므로 제 마음이 몹시 슬픕니다.
  그러나 이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제게 희망이 있나이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한결 같고 여호와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인자는 아침마다 새로우며,
  주님의 진실하심과 참되심은 심히 크시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기업이 되시니 내게 희망이 있도다'
  여호와는 주님께 소망을 둔 사람과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선하게 대해 주시는 분입니다(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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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잠히 여호와를 기다리라!(26-32)
  애가서 기자는 여호와의 징계를 받는 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자기 죄를 인정하고 여호와의 구원을 가디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짐을 지는 것보다 차라리 젊을 때에 매를 맞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다. 여호와께 징계를 받는 사람은 겸비해야 하며, 모욕을 당해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신 후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잠잠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좋도다.
  사람이 젊을 때에 자기 멍에를 메는 것이 좋도다.
  주님께서 힘든 일을 맡기셨으니 홀로 앉아 조용히 있으라!
  겸손히 입을 땅에 대라! 혹시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때리려고 하는 사람에게 뺨을 대어 주고,
  사람들이 모욕적인 말을 해도 묵묵히 참고 들어야 한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으신다.
  혹시 우리를 슬픔에 빠지게 하셨더라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26-32)."


* 회개하면서 여호와께 기도드리자!(33-41)
  주님은 원래 사람을 징계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를 바로 잡기 위해서 죄인을 때리지만, 그때에도 죄인들이 억울한 매를 맞지 않도록 보살펴 주신다. 하나님의 판결은 공의롭고 정당하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 판결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죄로 인해 매를 받는 백성이 할 일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손을 들고 하나님께 은총을 구하는 것이다. 
 "주님은 백성을 심판하거나 슬프게 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주님은 이 땅의 모든 갇힌 사람들이 주의 발아래 밟히지 않을까 염려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억눌리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시며,
  재판을 받는 사람이 억울한 판결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고 계신다.
  주님께서 명령하지 않으면 그 누가 말로 자기 뜻을 이룰 수 있으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명령을 좆아 일어날 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죄값으로 받는 형벌을 어찌 불평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한 일을 살피고 돌이켜 본 후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손을 높이 들고 마음을 열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드리자(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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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현재의 고난을 토로하며 자비와 은혜를 구함(42-66)

* 현재 당하는 고통을 고백하며 은혜를 구함(42-51)

  애가서 기자는 다시 비참한 현실로 눈을 돌린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배반한 유다 백성을 용서치 않으셨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자신들을 치셨으며,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유다는 열방 중에서 버려진 쓰레기와 폐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제 유다에는 두려움과 공포와 멸망과 파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유다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멸망한 유다를 돌아보실 때까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며 주님을 배반했나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나이다.
  주님께서 진노를 옷처럼 입고 우리를 추격하여 사정없이 우리를 죽이셨나이다.
  주님께서 구름을 옷처럼 입고 우리 기도가 주님께 이르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은 우리를 여러 민족들 가운데 찌꺼기와 쓰레기로 만드셨나이다.
  우리의 모든 원수가 입을 열어 우리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멸망과 파괴가 우리를 덮쳤나이다.

 
 저의 백성이 멸망하였으므로 제 눈에서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나이다.
  제 눈물이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흐르니,
  여호와께서 살피시고 하늘에서 돌아보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저의 성에 있는 여인들이 당한 일을 보고 제가 슬퍼하나이다(42-51)."

* 억울한 고난을 호소하며 보복을 요청함(51-66)

  애가서 저자는 대적들에 의해 무고한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민족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대적들은 그를 미워하고 모함하여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대적들은 애가서 저자를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며, 그는 물 속에 빠져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사람을 보내 그를 그 웅덩이에서 건져내 주셨다.

 "아무 이유없이 원수가 된 사람들이 새를 사냥하듯이 저를 쫓고 있나이다.
  저를 산 채로 구덩이에 던져넣고 저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물이 제 머리 위로 넘칠 때에 '나는 이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제가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저는 '제가 도움을 구할 때에 귀를 막지 마시고 저를 구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으며, 주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나이다.
  제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은 가까이 다가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주님! 주님께서 제 사정을 살펴주셨고, 제 생명을 구해주셨나이다(51-58)."

  애가서 저자는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원해 주시고 자신을 해치고, 조롱하는 대적들을 공의로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대적들은 자나깨나 그를 해치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때에 애가서 저자는 그들에게 직접 보복하거나 대항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겸손한 태도로 나라를 위한 기도를 계속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 그러나 악인들은 의인을 미워하고 그들을 조롱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을 해치려고 한다. 이러한 때에 의인은 대항하거나 보복하려 하지 말고, 겸손한 태도로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좋다. 그러면 하나님은 악인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들이 판 함정에 빠지게 만드실 것이다.

 "여호와여! 주님께서 제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보셨으니
  이제 제게 바른 판결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은 저의 원수들이 제게 복수한 것과
  저를 해칠 음모를 꾸민 것을 다 알고 계시나이다.
  여호와여! 주님은 그들이 저를 향해 하는 욕을 하고,
  저를 치기 위해 꾸민 음모를 모두 들으셨나이다.
  저의 원수들의 말과 생각은 하루종일 저를 해치려는 것으로 가득 차 있나이다.
  주여! 보옵소서! 그들은 앉으나 서나 항상 저를 놀려대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그들이 행한대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옵소서!
  그들의 마음을 처량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저주를 내려주옵소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시고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그들을 없애주옵소서!(6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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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정경
  애가서 4장은 2장과 같이 멸망한 예루살렘에 대한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슬퍼한 것은 예루살렘이 주전 586년에 재차 침공을 받고 완전히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전 596년과 586년에 일어난 침공으로 예루살렘에 일어난 비극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4장 역시 히브리어 알파벳을 따라 22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4-1. 예루살렘의 참상(4:1-10)

  바벨론에게 짒밟힌 예루살렘은 정말로 비참했다. 소중히 여김을 받던 성전의 보물과 귀중품들은 모두 탈취 당하고 흩어져 버렸다. 또한 존귀하게 여김 받던 예루살렘 귀족들도 질그릇처럼 멸시를 당하고 있었다. 양식이 떨어지게 되자 부모들도 인정이 메마르고 말았다. 어미들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아 아이들의 입천장이 달라 붙었고, 부모들이 우는 아이에게 빵을 떼어주지 않았다. 진수성찬을 먹던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고, 좋은 옷을 입고 자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다녔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지은 죄는 갑자기 무너져 버린 소돔의 죄보다 더 컸다. 지금 그들이 당하는 참상은 소돔이 당한 재난보다 더 크고 비참했다(1-6).

  눈과 우유처럼 피부가 희고 윤택했던 통치자의 얼굴은 숯보다 더 검게 되어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하여 막대기처럼 말라버렸다. 차라리 칼에 죽은 사람이 살아 남은 사람보다 형편이 나았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밭에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 속에 굶주려 죽어가고 있었다. 가련한 유다 백성이 멸망할 때에 착한 여인들마저 제 손으로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말았다. 멸망한 유다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음식이 되고 말았다. 애가서 저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애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범죄한 유다에 크게 진노하심으로 무서운 진노를 쏟아 부으셨다. 하나님은 완악하여 끝내 돌이킬 줄 모르는 예루살렘을 불로 태우시고 그 곳을 잿더미로 만드셨다(7-11).


4-2. 멸망의 이유(4:12-20)

 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12-16)
  그러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왜 이토록 비참한 상태가 되었는가? 애가서 기자는 그 이유를 사이비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찾고 있다. 유다의 사이비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이 견고한 곳에 있고, 그 안에 거룩한 성전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대적에게 침공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악한 일을 행했고 죄를 지었으며, 무고한 의인들을 죽여 그 피를 흘렸다. 그들은 영적인 소경이 되어 대낮에도 방황하고 다녔고, 그 옷에는 무고한 자의 피가 묻어 부정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 중에서 아무도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유다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마치 문둥병자나 부정한 시체처럼 취급하고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소리쳤다. 이로 인해 부정한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사는 곳을 떠나서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민족들도 부정한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저주 받은 유다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자기 땅에 살지 못하도록 추방시켜 버렸다. 여호와께서는 그들로부터 자비의 얼굴을 돌리시고 다시는 그들을 돌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의 제사장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셨고, 유다의 장로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12-16).

 나. 열방을 의지함(17-20)
  예루살렘은 마땅히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은총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보다 주변 국가들을 더 더 의지했다. 그들은 눈이 빠지도록 도와줄 사람을 찾고 기다렸다. 그들은 망대에 올라가서 자기를 도와줄 군대가 오기만을 가디렸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 대적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이제 유다의 멸망의 날이 다가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 국가들을 더 의지하는 유다에 징계를 내리셨다. 하나님은 대적들을 공중의 독수리보다 더 빠르게 만드셨다. 바벨론 군사들은 독수리처럼 재빠르게 도망치는 유다 군사들을 추격했다. 그들은 산 위에서 유다 백성들을 뒤쫒았고, 광야에서 매복해 있다가 그리로 도망친 유다 군사들을 붙잡았다. 유다 왕은 바벨론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전에 그 왕은 자신이 유다 백성들을 열국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의 계략에 말려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사로 잡히고 말았다(17-20).
 

4-3. 무자비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함(4:21-22)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형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우스 땅에 살고 있던 에돔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루살렘에 대적에게 함락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애가서 저자는 이러한 악행을 저지른 에돔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애가서 형제의 멸망을 보고 기뻐한 에돔 역시 장차 여호와께서 내리실 진노의 잔을 마시고, 진노의 술에 취해 벌거벗고 열국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시온은 이미 자기의 죄에 대해 벌을 받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는 유다 백성들이 사로잡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돔에게는 심판의 날이 남아 있었다. 이제 주님께서 에돔의 죄를 심판하실 것이며, 심판의 날에 에돔이 지은 모든 죄를 낱낱히 드러내실 것이다(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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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 : 회복을 바라는 기도(5장)
  애가서 5장은 3장과 같이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되고 유다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 간 후에 유다 백성들이 당한 혼란과 기근과 정치적인 압박을 묘사하고 있다.

5-1. 예루살렘의 비참상(5:1-18)

 바벨론인들은 유다 백성들을 철저하고 빈틈없이 유린하고 파괴시켰다. 유다는 모든 재산을 이방인에게 빼앗겨 버렸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었고, 여인들은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물과 땔감도 돈으로 사서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가장 낮은 곳에 떨어져 빈곤과 수치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애가서 저자는 이러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닥친 일을 기억해 주옵소서!
  우리가 당하는 수치를 살펴 보옵소서!
  우리 땅이 낯선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고
  우리 집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넘어갔나이다.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되었으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가 되었나이다.
  우리는 물도 돈을 내야 마실 수 있으며,
  땔감도 값을 치러야만 쓸 수 있습니다(1-4)."


  바벨론 군사들은 도망친 유대인들을 맹렬히 추격했다. 그러므로 도망친 유대인들은 크게 지쳤지만 쉴수가 없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애굽과 앗시리아와 조약을 맺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사라지고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죄를 남아 있는 후손들이 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종으로 있던 자들이 그들의 통치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손에서 백성들을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야에는 칼을 든 사람들, 즉 베드윈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숨을 걸고 유다 백성들을 공격하여 약탈했다. 이로 인해 양식을 탈취당하고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 유다 백성들의 피부는 아궁이처럼 새까맣게 타 버렸다(5-10). 

 "원수들이 쳐들어와서 시온의 여인들과 유다 성에 사는 처녀들을 짓밟고 유린했다. 원수들은 유다의 관리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고 장로들을 업신여겼다. 젊은이들은 원수들의 노예가 되어 맷돌로 곡식을 갈고 있었고, 아이들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리고 다녔다. 장로들은 더 이상 성문 곁에 앉지 못했으며, 젊은이들도 더 이상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있던 기쁨은 사라졌고, 그들이 추던 춤도 슬픔으로 변하고 말았다. 유다 백성 위에 놓여 있던 면류관은 사라지고 그 대신 수치의 관이 놓이고 말았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회개치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고 말았다. 이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의 상처를 입고 병이 들었으며 눈마저 어두워지고 말았다. 이제 시온산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인적이 끊어지고 여우들이 어슬렁거리는 곳이 되고 말았다(11-18).


5-2. 구원을 호소함(19-22)

  이러한 참상 속에서도 애가서 기자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고 소망의 노래를 부른다. 애가서는 이러한 애가서 저자의 소망에 대한 노래로 끝이 나고 있다. 애가서 저자는 여호와의 통치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나 오래동안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제 그는 유다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이제 재난의 날이 너무 오래 되어 자신들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며 이전에 누렸던 영광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애가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유다에 내린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그 동안 너무나 큰 시련을 당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심판이 끝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비어지고, 하나님의 자비가 대신 그 잔을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며 주님의 보좌는 영원하나시이다.
  어찌하여 주님께서 이토록 완전히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버려두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겠나이다.
  우리의 날이 영광스러웠던 옛날처럼 되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나이까?
  영원토록 진노를 풀지 않으시겠나이까?(19-22)"


               * 결론: 예레미야 애가의 중심 메시지 * 

  애가서 메시지의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유다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북 이스라엘이 당했던 것같은 비극을 맛보아야만 했다. 멸망 직전에 요시야 왕은 여러 부분에 걸쳐서 대개혁을 감행했다. 그는 성전을 정화하고 수리했으며, 지방의 산당들을 철폐하고 각종 이교적 요소들을 제거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국가 생활의 중심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애굽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고,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 노리개 감이 되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에게 등을 돌렸다. 이로 인해 유다는 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면 마지막 요시야의 개혁은 아무런 효험이 없었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 신보다 연약한 분이신가?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점령을 당하고 큰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예레미야 애가서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고 있다.

  애가서는 애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완전히 죽은 시체를 위한 장송곡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유다는 실제로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은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했지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셨다! 하나님은 바벨론 신에 눌려 힘을 못쓰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범죄한 유다를 치신 분이었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무관심하거나 무력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범죄한 자기 백성을 징계하고 연단하여 자원하여 율법을 지키는 백성을 만드시길 원하셨다(1:13-15, 2:1-8, 22, 3:1-18, 43-45 등). 이러한 점에서 애가서 저자는 여호와께서 여전히 살아계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연단 기간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예레미야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반면, 예레미야 애가서는 멸망한 예루살렘을 돌아보면서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애가서 저자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며, 처녀와 소년들이 칼에 맞아 죽고, 굶주린 여인들이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이러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슬픈 노래"를 지어 그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며, 이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는 어둡고 암울한 기나길 날을 보내면서도 날마다 새로우신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한 줄기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애가서는 유대인의 정경 중에서 지혜서에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7월 중순에 지키는 예루살렘 멸망 기념일(주전 586년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기억하는 날)에 읽으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