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역사 간증

아기 예수 탄생의 역사

헤븐드림 2011. 12. 24. 07:33

 

 

큰 별의 징조와 동방박사가 만난 예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큰 별이 이스라엘 중에서 나타날 것을 수 천년 전에 이미 예언 하였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

 

  발람을 통하여 한 별의 탄생을 예언한 본문 내용은 그 시대에 나타날 별이 아니다. 먼 훗날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질 예언이었다. 정한 때가 될 때에 새벽 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징조가 하늘에 나타난다고 하였으나 모든 사람은 관심 밖의 일이었고 그 별이 나타났으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백성 가운데서도 별을 본 자나 어떤 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고 그 약속한 예언이 이루어질 시대가 왔으므로 베들레헴에서 큰 별 되시는 예수가 이 땅에 임하셨다.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양치는 목자들에게는 천사의 지시가 있으므로 메시야 탄생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또 이방 백성 가운데는 먼 페르시아 또는 그 이웃 동방의 어느 나라에 있는 천문학 박사들에게 별의 징조를 발견케 하므로 메시야 탄생을 알게 하였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2:1-3)"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났고 그들이 다녀간 다음에 어린 아기예수는 짐승의 우리 속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다. 베들레헴의 조그마한 집에서 율법의 순서와 절차에 따라 인간이 행할 종교행사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마쳤다. 아기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그 무렵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그 어간에 박사들은 계속 별의 인도를 따라 왔고 수도 예루살렘으로 찾아와서 왕의 탄생을 쉽게 알려고 하였으나 실패했고 그 밤에 다시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오게 된 것이다.

 

1) 별을 따라온 박사들과 베들레헴의 표적 

  그 당시에 박사들은 천문학(天文學)을 연구한 사람들로 상위 계급에 속한 자들이며 고대 예언들을 관심을 가지고 상고하면서 깊이 연구한 자들이다. 하늘의 별들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그 시대에 나타날 인도자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겸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박사들이 자기들의 나라에서 발견한 별이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으며 예루살렘까지 와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란 것을 알았을까? 이들도 발람이 별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그 때에 나타난 이상한 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별로 결부시킨 것도 궁금해진다.

 

  이들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서 났느냐고 선뜻 질문을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질문이다. 박사들은 밤하늘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와 이상한 징조를 보면서 아주 큰 인물이 태어난 것을 깨닫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별의 인도를 따라 힘들고 험한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예물은 큰 부자가 아니면 준비할 수가 없을 만큼 거금이다. 이들은 수많은 학박사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선택한 자들이며 고달프고 협착(狹窄)한 길을 선택하였으나 가장 보람된 일을 하게 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을 불러 쓰실 때에는 진실하고 마음이 깨끗한 자를 찾으신다. 지금까지 선택받은 자들을 보면 몸이 깨끗한 마리아를 부르셔서 예수를 탄생시키셨고 마음이 깨끗한 목자를 불러 메시야 탄생의 비밀을 알려 주었다. 시므온이나 안나 역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았던 자였고 박사들 역시 많은 재물을 아기 예수께 조건 없이 선뜻 내어 놓은 것을 보면 세상물질에 깨끗한 자들인 것 같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깨끗한 자를 찾으시고 사명을 주시며 역사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예루살렘에 도착한 박사들 

  아기예수를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동방박사들이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오는 기간은 상당한 시일이 걸린 것 같다. 이들이 별을 발견한 때로부터 생활이 바뀌게 되었다. 밤에 나타나는 별을 따라가다 보면 낮에는 쉬어야 하지만 밤이라도 구름이 짙게 끼어있으면 그 밤은 가는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는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고 보아야 한다. 별을 따라온 박사들은 별이 나타나는 밤을 기다렸다가 별이 멈출 때까지 따라가야 하는데 지치고 피곤한 상황에서 예루살렘 근처에 가까이 왔다는 안도감 속에 하룻밤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 생각대로 왕실로 찾아간 것이다. 유대국의 새 임금은 당연히 왕이 통치하는 수도 예루살렘에서 태어날 줄을 알고 헤롯왕에게 동방에서 별을 보고 따라온 사실을 알리고 왕으로 태어난 아기께 경배하려고 했던 것이다.

 

  헤롯왕은 박사들의 말을 충격으로 듣고 이 사건에 대하여 당황하였고 예루살렘은 큰 소동이 벌어졌다. 헤롯왕은 왕위를 넘보는 자신의 두 아들과 아내까지 처형을 하였고 자기의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 자신의 혈통까지 끊어 버리는 가장 잔인한 악마였다. 왕이 출현했다는 박사들의 말에 예루살렘은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였고 헤롯을 통하여 무고한 피가 또 얼마나 쏟아지게 될는지 두려움에 쌓이고 큰 비극이 일어날까봐 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도 아기예수를 전혀 몰랐고 그 뒤에 박사들이 와서 새로운 왕의 출생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으나 왕이 난다고 하는 성경구절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었으나 태어나신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패된 정치아래 종교지도자들까지 그들의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냐고 헤롯이 물었을 때에 종교 지도자들은 곧이곧대로 미가서 52절에 예언되어 있는 성경구절을 말하며 출생할 장소까지 왕에게 자세히 알려 주었다(2:5-6).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헤롯은 더군다나 메시야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별을 보고 따라왔던 박사들이 인간방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왕의 출생을 물었으나 큰 소득도 얻지 못하면서 오히려 이 사건 때문에 생각지 못했던 큰 사고가 벌어졌다. 박사들과 종교지도자인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순간적인 실수로 무고한 어린생명이 학살을 당하여 피바다를 만든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신중(愼重)히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일을 처리할 때에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서 오늘의 지도자들도 더욱 조심해야 할 경고가 되는 것이다.

 

  헤롯왕은 자신의 혈통까지 죽이면서 왕의 자리를 지켜왔는데 또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자신은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박사들에게는 자기도 경배하러 가겠다고 위장술 속에 칼을 갈고 있는 것을 박사들은 알지 못했다.

 

3) 박사들(Ma;goi 마고이)이 만난 아기(paidivon 파이디온)예수 (2:9-11) 

  다시 밤이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박사들을 인도했던 그 별은 역시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나타나서 아기(paidivon 파이디온)가 있는 곳, 조용한 시골 베들레헴으로 계속하여 인도하고 있었다. 베들레헴에서 별이 머문 곳은 마구간이 있는 곳이 아니라 조그마한 어느 가정집 위에 별이 멈추었다. 그토록 멈추지 않고 인도하던 별이 베들레헴 언덕의 작은 마을에 아기예수가 있는 집 위에 멈추게 되니 힘들게 별을 따라 온 박사들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별이 멈추었으니 밤마다 산 넘고 물 건너느라 고생했던 것도 이제 끝나게 된 것이다. 수고한 결과대로 그들이 찾던 예수를 만나게 되니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런데 박사들이 들어간 곳은 요셉과 마리아가 임시 거처하는 초라한 보금자리인 가정집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베들레헴까지 왔을 때에는 구유에 뉘었던 아기(brevfo"브렙호스)는 그곳을 떠난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탄생을 맨 먼저 알고 찾아온 자는 목자들이었고 만난 장소는 구유(favtnh/ 파트네)라고 하였다(2:7,12,16). 그런데 그 뒤에 맨 마지막에 아기예수를 만난 자들은 밤 하늘에 나타난 별을 보고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이 아기예수를 만난 곳은 구유가 아니라 가정집(oijkiva  오이키아)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2:11). 동방박사들이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마태는 증거하고 있다.

 

  '오이키아(oijkiva )'는 일반 서민들이 사는 가정집을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머리에는 구유에 누인 아기(paidivon 파이디온)께 박사들이 와서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고 입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고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성탄시즌에 나오는 카드들은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박사들이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열심히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도 고쳐져야 하고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 목자들이 마구간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갓 태어난 신생아(brevfo" 브렙호스), 즉 영아(嬰兒)였고 박사들이 가정집에서 만난 아기(paidivon 파이디온)예수는 자라나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아(幼兒)였다. 그러므로 목자들이 아기예수를 만난 장소와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를 만난 장소가 서로 다르다.어린아이라는 단어도 갓 태어난 아기와 조금 자라난 아기를 구별해 놓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흘러간 시간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1주일 이상 마굿간에 있을 수도 없고 할례는 더더욱 할 수가 없다. 요셉이 임시 숙소라도 준비한 뒤에 식구들을 옮겨 놓고 할례 할 날이 되매 아기예수께 할례를 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이 찾아온 시기는 할례도 이미 끝난 뒤였고 40일에 드리는 제사도 끝난 다음이다. 박사들이 별을 보고 출발하여 베들레헴으로 왔을 때까지 그 동안 흘러간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애굽으로 피난 갈 때의 어린 예수의 나이를 대강은 알 수가 있다. 또 헤롯왕이 2살 아래의 아기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을 보아도 어린 예수의 나이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6. 애굽으로 피난 가심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paidivou파이디온)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2:13-15)"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예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후에 고국으로 갈 때에는 왔던 길을 피하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기를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이려 하니 애굽으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요셉은 그 밤에 급히 일어나 아기(paidivon 파이디온)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길을 떠날 때에 박사들에게서 받은 예물이 그들에게는 생활의 기초(基礎)가 되었다.

 

  이날까지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출생한 아기예수를 동방박사들이 찾아왔다고 잘못 전달되어 왔기 때문에 피난 가는 시점도 틀리게 되었다. 예수가 출생 즉시에 박사들을 만났고 서둘러 애굽으로 피난길을 떠나간 것으로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성경이 증명하는 것은 다르다. 예수의 출생 내용과 아기예수를 먼저 만난 사람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사람의 몸으로 베들레헴 말 구유에 오신 예수는 제일 먼저 목자들을 만났고 그 다음에 모세 율법에 기록한 규례와 율례를 따라 8일 만에 할례와 40일 만에 성전을 찾아와 번제와 화목제도 계명을 따라 다 준행하였다(12:8). 비둘기 한 쌍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시므온과 안나도 만난 것이다(2:21-38).

 

  이렇게 누가복음 2장 내용을 정리하고 난 다음 마태복음 21절에서 15절 내용을 보면 그 다음 사건이 이어진다. 동방에서 별을 보고 따라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렸다가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예수를 만나 경배하고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을 드리고 돌아간 후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예수와 함께 애굽의 피난길을 떠나간 것으로 보아야 내용의 정리가 된다.누가복음 238절에는 안나의 감사가 나오고 바로 39절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마태복음 2 14절에서 18절의 내용이 빠진 것을 알 수가 있다. 누가는 애굽에 피난 간 것을 말하지 않고 바로 갈릴리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나 갈릴리로 가기 전에 마태복음 216절에서 22절의 내용을 삽입(揷入)하여 애굽에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는 과정과 시간을 계산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이 움직이는 것이나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주관하시고 예정하신 그 계획된대로 진행하시는 하나님은 마귀가 발악할 것도 미리 아시고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까지 호적하러 가는 일에 동행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가 출생한 다음 애굽까지 가서 살아갈 준비를 위하여도 박사들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오게 하여 예수께 드리게 하므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게 하신 것이다. 이 예물은 서민이 만질 수도 없는 큰 재물이며 애굽에 가져가면 바로 현찰과 마찬가지로 쓸 수가 있으므로 환전할 필요도 없이 바로 사용할 수가 있다. 만약 재물이 없으면 애굽에 가서 고달픈 종노릇을 해야 하는데 사명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사명역사를 위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길을 여시는 것도 깨달을 수가 있다.

 

  출애굽기 422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였고 또 호세아 111절에 보면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했다. 출애굽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었으나 이 말씀이 예수님에게도 예언이 되어 응했다는 것이다. 말씀을 또 다시 이루기 위하여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예수와 함께 그 밤에 120Km나 되는 애굽 땅으로 가는 피난길을 택하게 하였다. 애굽에 보내는 환경을 주관하시고 예언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보면,

  첫째로,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애굽지역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이 피난하기 좋은 땅이 되도록 하였다. 

  셋째는, 헤롯의 통치권 밖으로 안전지대에 하나님이 보내셨고 또 그 지역에는 많은 유대인이 있었기에 그곳에 가서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도 사명에 충성하는 종에게는 원수의 눈을 가리우게도 하시고 대적자를 꺽으시기도 하시고 생활에 필요한 물질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누구를 통해서라도 준비시키며 삶과 환경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나의 모든 형편을 주가 먼저 아시고 때를 따라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7. 어린아이의 희생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2:16-18)"

 

  '라마'는 베냐민의 성읍인데 '라마의 통곡'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이다(31:15).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 당하고 그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가면서 통곡할 것을 말한 것이다. 실제로 성경역사를 보면 야곱의 아내 라헬이 난산 끝에 베냐민을 낳고 그 어머니 라헬이 죽었는데(35:16-18) 본문은 어린 자식들이 죽음을 당할 때에 베들레헴 어머니들이 울부짖는 울음을 라헬의 통곡으로 묘사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의심이 가는 지역에 출생한 어린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기로 마음에 결심을 하였다. 박사들이 찾아와서 별이 나타난 때를 설명했기 때문에 그 깃점을 표준하여 두 살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사이에 태어난 남자아이는 모조리 다 죽였다. 박사들의 순간적인 생각의 실수로 예루살렘에 와서 헤롯을 찾은 것이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다 죽게 된 것이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도 모세 나이의 어린아이가 수없이 희생이 되었고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예수나이 또래의 어린 사내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마지막 때에도 역사하는 종의 나이가 되는 백성들이 수없이 희생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역사가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말씀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 조심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어두움의 시녀(侍女)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많은 양떼를 죽이는 일은 절대로 금물이다. 주님이 맡겨 놓은 귀한 양들인데 순간의 실수로 그 양들이 사탄의 손에서 희생이 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하겠는가? 어두운 이 시대에 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양떼를 미혹하는 일에 단호히 대처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8. 헤롯의 죽음과 고국으로 돌아온 예수

 

  악마인 헤롯왕 앞에서 그의 자리를 넘보거나 방해되는 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자기 앞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이 들면 재판도 심문도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죽였고 두 살 아래 어린생명까지 학살을 하였지만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 올 때에는 피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악마 헤롯은 일흔살의 나이로 무서운 질병의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하였다. 막강한 군사의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헤롯의 권세는 외양간에 태어난 어린예수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였고 그렇게 자랑하던 영화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뜻 하나가 이루어지기 위해 선택되었을 때에는 여러 가지 훈련을 받게 하시지만 그 결과는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그곳에서 또 다시 원수의 칼날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길에 올랐으나 그 생활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주의 사자가 세 번째로 애굽에 사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의 죽음을 알려 주었고 요셉에게 모친과 아기(paidivon 파이디온)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였으나 두려움의 공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헤롯의 아들 아킬레오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2:19-22). 그러나 사명이 있는 자에게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였고 다른 생명을 대신 희생시키더라도 그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신다고 하였다(43:1-4).

 

  하나님은 그 시대에 불러 쓰시는 종을 두려움이나 고통을 그 자리에서 피하게 하실 수 있으나 육체의 시련을 계속 허락하시는 것은 사람이 시련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자신은 강해질 뿐 아니라 훈련 받은 육체는 무슨 일을 만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홀로 설수 있는 방법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도 그랬고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간 요셉도, 모세도 마찬가지로 고난의 풀무에서 이기게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어떠한 환경이 부딪혀 온다고 해도 헤쳐나갈 힘이 생기게 되고 어디를 가도 잘 적응을 할 수가 있게 하였다.

 

  이러한 훈련과정이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연약한 마리아의 고된 생활은 참기가 어려운 환경에 부닥쳤고 남편을 따라 만삭의 몸으로 고향으로 내려왔으나 마구간에서 아기예수를 해산을 한다는 것은 젊은 여인으로서는 너무나 치욕적(恥辱的)인 일이며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애굽 땅에서 피난생활 역시 힘든 삶이었으나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발붙일 곳도 없었다. 또 다시 나사렛으로 가야 할 사정에 처하였으나 마리아는 주어진 모든 환경에 원망 없이 잘 적응(適應)하였다.

 

9. 나사렛 땅에서 성장하신 예수

 

  이제 마태복음 223절에 보면 애굽에서 올라온 요셉의 식구는 유다에서 얼마 있지를 못하고 주의 사자의 지시하심에 따라 갈릴리로 올라가서 나사렛에서 살게 된 것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누가복음 239절을 연결해 보면 예수 출생과 애굽 피난과 나사렛에서 살게 되는 모든 사건들이 확실하게 해석됨으로 모든 문제들이 잘 풀어질 수가 있다.

 

  위에서 말한대로 요셉은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말씀이 응하는 과정을 따라 애굽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남쪽 유다 땅에 와서 살게 되었다. 어려운 생활형편은 윤택하지 못하였고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에게 네 번째로 나타나서 북쪽 갈릴리 지방에 올라가서 나사렛 동네에 가서 살도록 하였다. 나사렛에 돌아온 어린 예수는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2:40)"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이후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애굽에서 돌아온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예수는 유대 땅에서 다시 북쪽 갈릴리 지방에 있는 나사렛으로 올라가서 생활하였고 예수는 그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동하는 생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과정이었다.

 

  예수께서 조그마한 빈촌마을에 돌아와서 성장하였으므로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실제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에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말했다(21:11).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 앞에는 천한 동네, 멸시받는 마을 이름이 항상 따라다녔다(1:45). 예수는 나사렛에서 살면서 부모와 함께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다녀오게 되었고 아버지를 여의고 30여세까지 목수의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렸던 것이다. 공생애의 시작인 복음역사의 출발도 북쪽 갈릴리였고 그 지역에서부터 복음운동의 먼동이 트기 시작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9:1-2).

 

  지금까지 아기 예수를 맨 먼저 만난 사람을 순서대로 성경을 찾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베들레헴 목자들이다(2:15-20).

  둘째는, 출생 이후 40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이다(2:25-34). 예수님의 부모들이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를 드리는 그 어간에 제사장은 아기예수를  만났을 텐데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기예수가 메시야인 줄 몰랐고 율법의 규례에 의하여 제사를 드리는 일반 아이들로만 생각하였던 것 같다(2:22-24).

  셋째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안나이다(2:36-38).

  넷째는, 동방박사들이다(2:10-11).

 

  이제 주의 종들이 성경을 이해할 때에 짝을 맞추어서 성경 자체가 성경을 해석을 하는 것이 참 진리가 되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서 말씀에 바로 서기를 바라는 것이다. 특히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에 구유에서 아기 예수가 동방박사와 만나는 모습을 카드에나 그림엽서에서 보더라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리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출생한 년대는 학자들 간에 달리하고 있다. 대개 B.C4세기부터 B.C7세기까지 말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으나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참고, 박성목 목사 저의 「출애굽과 유월절연대」도표).

 

  21세기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굳센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으리라'는 주의 말씀을 붙잡고 기다릴 때에 초림에 메시야를 만난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다시 오실 주님을 생전에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붙잡고 간절한 소망으로 기다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