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소설들은 막 근대적 시설과 분위기와 맞닥뜨린 식민지 조선 당대의 기념비요, 식민지 조선 당대인의 자화상이다. 그의 소설은 도시 빈민과 빈민가, 룸펜프롤레타리아, 유흥 오락장, 매매춘과 연애의 풍속도, 도시의 거리, 교통망, 대형 건물이 교직하면서 식민지 근대와 그것에 촉발된 당대인의 내면을 특유의 문체로 표상해냈다. 여기 실린 여섯 작품은 그런 이상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이 될 만한 것들이다.
〔기획의 말〕중에서
우리는 이상의 '권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교환과 온갖 감염으로 득시글거리는, 근대에 연루된 식민지 지식인의 반성적 시선이 출발한 한 지점이다. ‘공포의 초록색’ 및 ‘치사스런 도시’ 동경과 더불어 말이다.
물론 ‘죽음을 각오’한 그 시선의 각도와 방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를테면 도시의 거리에서 오직 ‘여인과의 생활을 설계’했던 총독부 건축 기수 김해경은 결국 오들오들 떨면서 도처에서 들키기도 했던 것이다. 요컨대 그는 환자이고 룸펜이었으며, 불효자이자 ‘후떼이센진(不逞鮮人)’이었다. 또 그는 다음과 같이 ‘19세기와 20세기 틈사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이기도 했다.
......
‘골목’과 ‘은화’와 ‘세균’ 속에서 끝내 ‘지식의 첨예 각도 0도’로 나아간(또는 그것에서 비롯된) 이 ‘권태’는, 근대라는 테마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 내의 운명적인 위치를 단지 지칭할 뿐만 아니라 음울하게 작동시키는 본질적인 원리다. 그리고 오직 ‘죽음으로 직통하는 프로그램’이었던 이 원리는 이상과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들을 꿰뚫고 있는 한 가지 핵심이다. 예컨대 ‘암실’(「지도의 암실」), ‘파라독스’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날개」), ‘위자료’(「지주회시」), ‘산호 채찍’(「종생기」), ‘패배’(「실화」), ‘질투’(「동해」) 등은 모두 ‘권태’의 다양한 현상이자 결과들이다. 이토록 ‘권태’는 이상 자신이었다. 동시에 그를 둘러싼 환경이었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작품들은 이상의 작품 가운데서도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것들이다. 이제까지 출간된 작품들은 서지학적 엄밀함을 결하여 이상 문학의 진면목을 크게 훼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소설선은 발표 당시의 원문과 모든 문장을 일일이 대조하였으며,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꼭 필요한 주석들을 달아놓았다. 꼼꼼한 교감을 거친 본문과 친절한 주석은 이상 문학의 진면목을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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