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그레고리오 1세(라틴어: Gregorius PP. 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I)는 제64대 교황(재위: 590년 9월 3일 - 604년 3월 12일)이다.
그레고리오 1세는 최초로 수도 생활을 체험한 교황이자 라틴 교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교회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 이전의 그 어느 교황보다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전례 분야에서는 로마 양식 미사 전례를 개혁하여 미사 전문을 오늘날의 형식으로 만들고, 각 지방에서 제각기 불리던 성가들을 재정리해 전례와 전례력에 알맞게 맞추는 업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 전례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1. 교황 그레고리 1세는 고대와 중세의 가교 역할을 한 뛰어난 교회지도자요 행정가요 신학자로서 부유한 생활을 버리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청빈하고 엄격한 금욕생활로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수도사의 길을 걸었던 그의 정신을 되새겨보며 우리를 돌아보자.
2. 수도원적 성향이 강한 그는 교황의 자리에 욕심이 없었으나 백성들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황이 된 후에 이민족 침공으로 발생한 피난민들에게 교회의 재산을 풀고 보살피는 일을 추진하였다. 그는 교회가 부를 축적한 채 사회적 빈민층과 약자에게 인색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너무 많은 규정과 원칙, 그리고 자체 사업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있으면서도 쓸 줄 모르는 교회의 잘못된 관행은 없는지 살펴볼 때이다.
3. 그레고리우스 1세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 후에 교황이 되어 황제가 없던 시대에 황제의 역할도 겸했던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혼란과 이민족의 침입 속에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더욱 강화하여 교회의 내적 개혁과 이민족의 기독교로의 개종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선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당시의 위기 상황에서 교회를 지켜내었다. 안팎으로 안티 세력에 둘러싸인 오늘의 기독교가 마치 태평성대인 것처럼 너무 신학적으로 방자하고 이교도와 사이비, 이단들과의 싸움에서 전의(戰意)가 무뎌있지는 않는지 반성할 때이다.
4. 그레고리우스 1세는 기독교가 암울한 시대에 "어둔 밤이 지나 먼동이 터온다"라는 위와 같은 찬송시를 만들어 교회를 위로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희망과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 시대의 교회를 살리고 희망을 주는 찬송을 만들어보자.
5. 그는 당시의 예배와 음악의 개혁에 큰 관심을 보여 여러 지방의 음악들을 수집한 그레고리성가집(Gregorian chant)을 편찬하였는데 그레고리성가집은 당시 민요들을 많이 담고 있다. 이 찬송곡을 후대에 전수한 페이레이도 많은 민요와 민간음악을 연구하고 수집하였다. 교회음악의 민요 수용에 대하여 폐쇄적인 한국적 상황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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