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책읽기

폭풍우/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헤븐드림 2024. 7. 31. 05:20
                             르 클레지오
 

노벨문학상 수상(2008)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는 8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주 해녀 기사를 본 적 있노라고 했다.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전복이나 문어 따위를 캐 오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겼고, 끝내 2007년 제주를 찾은 그는 실제로 해녀들과 만나게 됐다. 2014년 그가 발표한 소설 ‘폭풍우’는 책머리의 헌사대로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 바치는 작품이었다. 이 ‘폭풍우’와, 또다른 작품 ‘신원 불명의 여인’을 한데 묶은 그의 소설집 <폭풍우>(송기정 옮김, 서울셀렉션)가 이번에 한국에서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폭풍우’의 공간적 배경은 제주도다. 베트남전쟁 종군기자 출신인 필립 키요(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주인공과 같은 이름)는 사랑하는 여인을 바다로 떠나보낸 지 30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종군기자 시절 민간인 소녀를 상대로 한 군인들의 성폭력을 방관해 감옥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죄의식과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한다. 섬에는 아버지 없이 해녀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3살 혼혈 소녀 준이 있다. 준에게 키요는 아버지이자 남자로서 가까운 존재로 다가오고, 키요는 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더듬게 된다.

 

소설은 제주도라는 배경과 해녀들의 삶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섬이라는 공간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조건인 바다와 폭풍우는 두 주인공에게 때론 죽음으로, 때론 삶으로 격렬하게 교차하며 다가온다.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해낸, 바다를 맨몸으로 드나드는 해녀의 생활 역시 마찬가지. “매일같이 해산물을 따는 그 해녀들이 없다면 바다는 가까이할 수 없는 적과 같은 존재이리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키요는 준과의 만남을 통해 “자유를 다시 찾았”고, 키요의 운명에 함께 이끌려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던 준은 자신을 구한 소중한 엄마와 함께 결국 섬을 떠난다.

함께 실린 ‘신원 불명의 여인’은 아프리카 해변에서 성폭행의 결과로 태어난 소녀 라셀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바다와 바람, 파도를 배경으로 폭력, 전쟁, 출생, 정체성 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서로 닮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