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인간세계/신길우
어떤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갔다. 신전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느님은 들어오는 사람들을 차례로 맞이하여 그들의 전생의 삶의 선악(善惡)과 공과(功過)에 따라 새로운 삶의 길로 배정해 주고 있었다.
그가 하느님 앞에 서자, 하느님은 그의 전생을 살펴보고는 천국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다시 인간세계로 가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되물었다.
“천국은 어떤 세상인가요?”
그러자, 하느님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인간세계는 앞일이나 장래를 모르고 사는 곳이고, 또 일을 하고 노력해야만 사는 세상이지. 하지만, 천국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즉각 이루어지는 세상이지.”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다시 인간세계로 가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좀 의외로 생각되어 그 이유를 물었다.
“다들 천국으로 가고싶어 하는데, 너는 어째서 인간세계로 가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래가 어떤지를 환히 알면 무슨 희망으로 살겠습니까? 더구나,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즉시 이루어진다면 사는 맛이 안 날 텐데, 무슨 재미로 천국에서 살겠습니까?”
하느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를 다시 인간세계로 가는 길로 배정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행복은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와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행복은 하늘의 별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다가가면 저만치 물러서는 무지개처럼 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행복이란 사는 맛이다. 따라서 행복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바로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을 완수해 낸 경우에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곧 사그라진다. 미완성은 끊임없이 추구하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완성은 완수의 행복을 잠시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천국이 완성된 행복을 언제나 즉각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희망을 품고서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할 수 있는 인간세계보다 결코 더 행복하달 수는 없을 것이다. ☺
카멜레온의 죽음/신길우
어린 카멜레온이 나뭇가지에서 놀다가 땅위를 내려다보았다. 땅은 풀이 돋아나서 초록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좋아서 카멜레온은 풀밭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연초록의 싱싱한 풀잎들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놀았다.
그것을 본 어른 카멜레온이 걱정이 되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얘야! 어서 초록색으로 바꿔라!"
그 소리에 어린 카멜레온은 몸 색깔을 초록색으로 바꾸면서 어른 카멜레온을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왜 맨날 색깔을 바꾸며 살아야 해요? 모두들 자기 색깔을 가지고 사는데요."
그러자, 어른 카멜레온이 타이르듯이 말해 주었다.
"그건 우리가 약해서이지. 색깔을 안 바꾸면 다른 것에게 잡혀먹힌다. 그래서 주변 색과 맞추는 거란다."
그래도 어린 카멜레온은 알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우리보다 힘이 더 없는 벌레들도 색깔을 안 바꾸고 잘만 살던데요?"
그러자 어른 카멜레온이 설명해 주었다.
"벌레들은 그 대신 자기 몸 색깔과 같은 곳에서만 산단다.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고."
그래도 어린 카멜레온은 불만이었다.
"쳇, 우린 뭐 자존심도 없나요?"
그러자, 어른 카멜레온이 다시 타이르듯이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그건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 일이다. 그러니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주변의 색과 항상 잘 맞춰서 살거라."
그래도 어린 카멜레온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저도 다 컸단 말예요. 저는 저대로의 색깔로 살 거예요."
그러고는 어린 카멜레온은 풀밭인데도 초록색이 아닌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몸빛을 바꾸었다. 그러자, 지나던 뱀이 알아보고 다가와서는 그 젊은 카멜레온을 한 입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
아버지가 심은 나무 -- 느티나무/신길우
나의 고향 시골에는 마을 어귀에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동네로 들어가는 큰길과 작은 길이 겹쳐진 네거리의 좀 널따란 길가에 자리했다. 나무들은 직삼각형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죽죽 뻗은 가지들이 마치 차일(遮日)을 친 것처럼 공중에서 서로 맞닿아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길가 남쪽에는 마을을 지나온 시냇물이 항상 흘렀다.
그래서, 여름이면 오다가다 쉬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터가 되고, 일철에는 새참이나 점심을 먹는 자리가 되곤 하였다. 단오나 백중 같은 때에는 한 바탕 동네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음력 정월 개보름날이면 정자나무 옆에 쌓은 돌탑 앞에다 집집마다 추렴한 양곡으로 시루떡을 해 놓고는 한 해 동안의 안녕(安寧)과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거리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나무는 나의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었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난 해쯤으로 생각된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로 천렵을 갔었다. 당시에는 먹을 음식을 만들어서 가까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하루쯤 놀다 오는 천렵(川獵)이 시골 사람들의 유일하다시피 하는 관광이요 휴식이었다. 그것도 일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날만은 그냥 놀고만 오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마을 젊은이들과 함께 작대기 굵기 정도의 느티나무 세 그루를 캐어서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날은 저녁에 늦게 도착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멋진 정자로 자라서 철철이 마을 사람들에게 즐거운 복을 내려 준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러하였다. 마을 어귀 사거리는 행인들의 길목이요 마을 사람들이 농토(農土)를 오가다 쉬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쉴 만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정자(亭子)를 지을 만한 형편은 못되었다. 그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사시던 아버지는 언젠가는 좋은 쉼터를 마련할 것을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천렵을 가서 주변에 작은 느티나무들이 많은 것을 보고는 정자 심기를 제안을 하였고, 젊은이들을 시켜서 캐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늙마에 와서 젊은 시절에 품었던 꿈을 결국은 이루시었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한참 뒤인 고희(古稀) 때에 그 정자나무 옆에 팔각의 정자를 손수 지으신 것이다. 이름도 당신의 호를 따서 송은정(松隱亭)이라 하고, 학자의 글을 받아 기문(記文)도 새겨 걸으셨다. 여러 사람들이 와서 놀면서 당시로서는 어렵게 보인 여덟 개의 둥근 시멘트 기둥을 만든 이야기로 웃음의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하나의 나무가 동구 앞에서 정자로 자라기까지에는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겨야 한다. 특히 그것이 서기에는 그러한 마음을 먹고 시작한 사람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일은 항상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려 깊은 사람들에 의하여 착수된다는 사실을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시골을 가다가 마을의 오래된 느티나무들을 보게 되면 불현듯 옛 고향 마을의 정자나무가 생각난다. 그리고, 거기에 아버지의 밝은 모습이 포개져 떠오르곤 한다. 어쩌다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문득 거기에 아버지도 함께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다가가 둘러보곤 한다. 아버지가 심어 준 나무는 거기에도 있고, 또한 내 마음속에도 남아 살아 있는 것이다. ☺
"신길우의 수필세계 1" 연재하며
문학박사 신길우(申吉雨) 교수는 본명이 신경철(申景澈)인데 대학시절부터 필명(筆名) 신길우로 수필을 써 온 수필가로, 한국의 국정 국어교과서와 중국 연변대학교 교재에 수필이 수록되었으며, 현재 조운수필동인회 회장, 한국수필문학가협회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와 충청문인협회 이사 및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남한강문학회 회장, 호서문학회 자문위원, 서울 서초문인협회 부회장과 한국문인협회․한국수필가협회․현대수필문학회 회원 등으로 여러 문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신 교수는 연변대학 초빙교수로 <수필창작>을 강의하면서 연변작가협회의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고, 심양시조선족문학회와 남한강문학회의 자매결연을 맺어 해마다 회원과 작품의 상호 교류를 하고 있으며, 중국 청소년윤동주문학상과 호주 동포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동포문인 유적사진전> <시인 윤동주 유적사진전>을 개최하고, 동포문인들의 추천과 발표 주선 등 해외 동포문학의 발전을 돕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신 교수는 국어학자로도 여러 권의 전문저서와 6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고, 십수회에 걸친 해외 국제학술대회와 문학행사를 주도 참여 발표하였고, 강원도 치악문화제 부위원장과 원주 (사)운곡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향토문화연구지 <원주얼>의 14회 발행, 문화탐방집 <원주에 가면 문화가 보인다> 발간 등 문화분야에도 많은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
신 교수는 『천국과 인간세계』『새와 인간』『언덕 위의 집』『아버지가 심은 나무』『모기 사냥』『차 한 잔의 행복』등 10권의 개인수필집과 시집을 출간한 바 있는데, 그의 수필들은 이러한 여러 분야의 연구와 국내외에서의 활동들이 용해되어 여러 평론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는 "간결한 문체" "정확한 언어 선택과 빈틈없고 예리한 서술 형태"에 "풍부한 소재와 알찬 주제로 독자에게 사고(思考)를 유도"한다고 하였다. 윤재천 교수는 "지성적 태도로 문학을 구축" 하고 "견고한 지성(知性)이 바탕된 분석적 식견과 태도"로 "우회(迂回)의 미학을 자기 문학의 특수한 방법으로 개척한 작가"로 평하였다. 최원현 수필가는 “공생(共生)의 함께 하는 삶”과 “질서와 자유로움”을 주조로 한 작품세계라 하였고, 이호림 교수는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내용면에서의 균형 감각과 전달방식에 있어서의 이야기성"을 특징으로 들면서 "읽기에 편안하고 부담이 없고,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준다"고 평하였다.
한국에는 좋은 글을 쓰는 많은 수필가들이 있다. 그러나 신길우 교수처럼 국어학자요 문화연구가요 수필가로 1인다역을 하면서 국내외로 오래 활동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사실에서 그의 수필들이 독자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리라 판단되어 《신길우의 수필세계》로 연재 제공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신길우 교수가 최근에 받은 <호서문학상>의 수상자 작품으로 『호서문학』제38호(2006. 12. 15.)에 실린 수필 3편을 싣는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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