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독칼럼

존 파이퍼 목사 "재물을 탐하게 만들지 말라"

헤븐드림 2023. 4. 20. 04:13

번영신학을 설파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메시지가 정말로 이러했을지 의문이 들곤 한다. 만일 정말로 그랬다면, 나는 크리스천이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설교를 하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매우 기만적일 뿐만 아니라 치명적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라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번영신학적 설교는 기만적이다. 또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딛전 6:9)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통해 설교자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호소하고자 한다. 

 

1.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도록 유인하지 말라

 

예수님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놀랐다.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여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하셨다.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3-27)라고 말씀하셨다.

 

번영신학을 설파하는 설교자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굳이 사람들을 천국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가?”

 

2.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설교를 하지 말라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반면에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이를 부추기는 설교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강하게 경고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6-10).

 

그러므로 나는 번영신학을 설파하는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고 많은 근심으로 스스로를 찌르게 하려는가?”

 

3. 결국엔 사라져 버릴 것에 집중하게 하지 말라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행위를 경고하신다. 즉, 간직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는 자로 살라고 가르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

 

그렇다. 우리 모두는 뭔가를 보물처럼 간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번영신학을 설파하는 목회자들은 왜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안에 있는 그러한 욕심을 부추기는가?

 

4.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라고 현혹하지 말라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도둑질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이를 성취하는 방법은 자신의 손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노동하는 주요 목적이 단순히 재물을 쌓아 놓거나 소유하기 위함이라면 이는 곤란하다. 수고의 목적은 “구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이 말씀은 더 많이 구제할 수 있다면 부자가 되는 것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진정한 의미는 더 많이 일하고 적게 간직함으로써, 더욱 구제에 힘쓰라는 뜻이다. 200만원을 버는 사람의 생활 양식이 80 만원을 버는 사람의 것과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지출의 한계를 정하고 나머지는 구제하는 데 사용하라.    

 

당신은 왜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어야만 비소로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추기는가? 당신은 단순한 삶 속에서 더 많이 구제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지 않는가? 당신은 왜 그들에게 보화는 경제적 부요함이 아닌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가?

 

5. 믿음보다 재물을 의지하도록 만들지 말라

 

히브리서는 우리의 현재 소유에 만족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5-6)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가진 소유에 만족하라고 말한다. 기록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이 약속을 존중하고 신뢰한다면, 사람들에게 부자가 될 것을 왜 계속 강조하는가?

 

6. 영적으로 질식하게 만들지 말라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 우리 안에 심겨진 생명의 말씀을 질식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셨다. 특히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이를 잘 보여주셨다. 그 비유에서, 말씀은 마치 가시떨기에 떨어져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지고 마는 생명으로 묘사되고 있다.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눅 8:14). 

 

당신은 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질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삶을 추구하도록 만드는가?

 

7. 소금이 맛을 잃고, 빛이 어둠 아래로 숨게 하지 말라

 

크리스천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유함이 아니다. 부에 대한 갈망과 추구는 곧 세상의 맛과 모양이다. 크리스천도 세상과 똑같이 부유함에 대한 욕망으로 산다면, 세상의 맛과 모양대로 산다면, 과연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번영신학적 설교가 가진 큰 비극은 그것을 포용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깨어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욕심만 부리면 된다. 그러므로 번영신학적 설교가 설파하는 부유함은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번영 설교는 그저 세상의 맛과 모양을 비추는 탐욕의 거울일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향한 그분의 빛과 소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으려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빛과 소금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중략]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1-14).

 

세상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소금을 맛보고 그분의 빛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부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할 보상을 기뻐하며, 고난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의지와 포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위이다. 번영을 약속하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인하지 말라. 그것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분이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신 바는 결코 번영을 약속하는 메시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