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그랄에서 아내를 빼앗김
[1-2절]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수풀[테레빈스 나무들] 근처에 거하다가(창 13:18; 18:1) 남방으로 옮겨 가데스와 술 사이에 살다가 그랄에 우거하였다. 원문의 뜻은 그러하고 대부분의 영어성경들도 그렇게 번역하였다. 남방(‘네게브’라고 부름)은 헤브론에서 애굽 시내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창세기 15:18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의 경계를 증거했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땅은 남쪽으로는 애굽 강 혹은 애굽 시내에서부터 북쪽으로는 큰 강 유브라데까지이었다. 그랄은 남방(네게브)의 북쪽에, 후에 블레셋 땅이라 불린 곳에 있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그랄에 거하면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말하였다. 사라는 89세가 된 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아내를 빠앗을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말 때문에 그는 아내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겼다. 그가 이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애굽에 내려가 우거할 때도 그 아내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창 12:15), 이번이 두 번째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으나 거짓말함으로써 자기의 목숨은 보호했는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자기의 아내를 잃었다. 그는 자기 목숨과 아내를 맞바꾼 셈이 되었다. 거짓말은 죄악이다. 사람이 범죄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다.
[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 낭패를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우셨다. 그는 그 날 밤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 네가 남의 아내를 취하였으므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꿈에 말씀하시는 것은 옛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죽음으로 위협하셨다. 그것은 남의 아내를 취한 것이 죽을 만한 큰 죄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레 20:10). 더욱이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출산할 자이었다. 죽음의 위협은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들 중의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비록 연약하여 거짓말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비상하게 개입하심으로 위기에서 그와 그의 아내 사라를 건지셨고 보호하셨다.
[4-7절]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6절에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라는 원어는 ‘여인을 만지지 못하게 함’이라는 뜻이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자신이 아직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하였고 자신이 그를 아내로 삼은 것이 의로운 일이고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했다고 변호했다. 아비멜렉은 상당히 도덕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도 도덕적 인물이 인정을 받고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도 그가 비교적 양심적인 자임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그를 막아 그로 ‘그에게 범죄치 않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죄는 무슨 죄나 다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아내와의 불륜이 큰 악이며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창 39:9).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죄를 회개하면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였다(시 51:4). 본문은 간음이 큰 죄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소개하셨다. 또 그는 그가 그의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와 그에게 속한 자들이 다 정녕 죽을 것이라고 위협하시며 아브라함을 특별하게 위하셨다.
[8-9절]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의 모든 신하들은 심히 두려워하였다. 아비멜렉은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큰 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왕으로서 그런 죄를 지으면 온 나라가 죄에 빠진다고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양심에서 나온 판단이며 세속사회에 주신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였다.
[10-13절]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異腹)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은 그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세속사회에서 사람들의 도덕적 행위를 기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잠 16:6).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는 죄를 지었다. 사라가 그의 이복누이이기는 했다. ‘나의 이복누이’라는 구절은 원문에 ‘나의 아버지의 딸이지만 나의 어머니의 딸은 아닌 나의 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사라는 그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나의 누이’라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었다.
[14-16절]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너를 위해 눈을 가리우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비멜렉은 양들과 소들과 노비들과 함께 은 천 개를 아브라함에게 주었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냈다. 아브라함은 연약 때문에 당했던 그 위기에서 구원을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으로, 그의 크신 긍휼과 돌보심으로 된 일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17-18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사라 때문에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에게 내리셨던 징벌을 거두어주셨다.
창세기 2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지 말자. 아브라함은 그랄에 우거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거짓말하게 될 것이다. 또 우리가 거짓말하는 죄를 지으면 아내를 빼앗기는 것 같은 어려운 일도 당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내세를 확신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31).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비상한 도움을 항상 믿자. 아브라함은 비록 자신의 부족과 연약 때문에 아내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아셨고 비상하게 그를 도우셨다. 그는 그 일에 개입하셨다. 그는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셨다. 그는 죽음의 위협으로 그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도로 돌려주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 때때로 실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과 도우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된 우리 모두의 큰 복이며 특권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로 오직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는 자이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생활을 했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는 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또 가정예배의 단을 쌓는 일을 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가장 복된 일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복을 늘 감사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길은 모든 죄를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막 1:15).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증거했다(요 1:12).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묵상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에 맞딱드렸을 때 사람들은 보통 약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정직하며 순결하고 의로움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든든한 도우심이 있지 않은가?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과 권세로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어떤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된 모순의 죄를 저질러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