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역사 간증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

헤븐드림 2021. 2. 27. 04:05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

A. 출생과 어린시절
어거스틴은 로마제국령 북아프리카 누미아의 타스테에서 354년 11월 13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시우스는 좋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재산은 적었던 이교도로서 놀기 좋아하는 세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가서야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모범적인 기독교 여성으로 그의 아들에 대하여 열렬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소년 어거스틴은 조숙하고 수줍어하는 편이었으나 명석하였다. 소년시절이 어거스틴은 신자나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할 것 없이 다같이 보통 말하는 기도, 즉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낄 때 쥐어 짜내는 최후 수단으로서의 기도 같은 것을 배웠다.
어거스틴은 고향 탁스테에서 얼마동안 살다가 공부를 하기 위하여 마다우라로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중에는 카르타고로 갔다. 그는 법률과수사학을 배웠으나 한편으로 무절제한 방탕생활에 빠지기도하여 어느 여인과 동거생활을 하였다. 18세가 되기전 아들을 낳아“아데오다투스”즉 “하나님이 주신 아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탈선에도 불구하고 수사학을 배우게 게을리지않아 연설가의 기초를 닦았다. 어거스틴 자신은 보다 더 정신적인, 즉 직업적 수사학자의 학술적인 생애를 살기로 그 자신의 결심을 굳힌 것 같다. 즉 수사학을 한다는 것은 국가적 내지는 공동사회 전체의 위에 속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죄로 인해 인간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원죄설을 그리스도교 교리로 완성시킨 교부로 이교도인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란 선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악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결핍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이 창조한 인간은 신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악은 없음으로부터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하며 잘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앙은 찾고 지성은 발견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내면 의식에 있는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의 형상만이 확실한 것을 말하며, 의심하거나 그릇되고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언급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 씨 팔로르 에르고 숨)는 내면에 있는 정신만이 신의 계시에 의해 비추어지는 진리를 영원히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Si fallor ergo sum’은 데카르트에 의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는 말로 응용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에 대한 본래의 성질에 대해 분명하고 시원하게 답을 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였기 때문이다.

후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에 대한 정의를 보고 “지식을 자랑하는 현대인이라도 시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시간과 씨름했던 이 위대한 사상가보다 더 깊이 있고 뜻있는 발전을 보지 못했다”(선한용, 『시간과 영원』, 성광문화사, 1992, 15쪽.)며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1장 1절의‘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라는 구절에 대해 세계는 없는 것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해석하였다.

당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만약 없는 것으로부터 신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이전에는 신이 무엇을 하고 계셨나?’라는 질문을 던진데 대해 신은 세계를 시간 안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했다고 답변한다.(어거스틴, 『고백록』, 최민순 역, 성 바오로 출판사, 1982, 276쪽.)

즉 시간은 공간과 동시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하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 되는 것이며 없는 것으로부터 창조된 시간의 시작,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생겨 시작한 시간은 영원토록 끝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성질을 『고백록』 제 11권은‘흘러가는 것이 없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흘러오는 것이 없다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현재도 없다’고 말하면서 되묻는다.



“그럼 과거나 현재의 시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며 그 과거가 있지 않게 되는 때는 언제며 미래가 없는 때는 언제인가?

현재가 항상 현재로 남아 있다면 과거로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간은 없고 영원만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를‘있는 것’으로 일컬을 수 있겠는가?”(어거스틴, 『고백록』, 279쪽.) 라는 물음에 대해 “이제야 비로소 똑똑히 밝혀진 것은 미래도, 과거도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과거의 현재, 현재의 미래, 미래의 현재 이렇게 세 가지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영혼 안에 있음을 알 수는 있으나 다른 데는 볼 수 없으니 즉,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다림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세 가지 때를 내가 볼 수 있고 사실 셋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김태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이론』, 「신학전망」, 1986, 285쪽.)고 답했다.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교부敎父, Father of the Church : ‘교회의 아버지’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5~8세기경까지 교리에 대한 학설과 교회 발전을 위해 일하면서, 신앙과 교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말한다.

신앙관계로 맺어진 사제지간을 부자(父子)로 보는 지칭이다. 현재는 중세 전 그리스도교 저술가 중에서 정통 교의를 신봉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신앙의 증인으로 교회에서 인정한 사람을 말하며, 크게 그리스문화권의 그리스 교부와 라틴 문화권의 라틴 교부로 나뉜다.

라틴 교부로 유명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푸리아누스ㆍ암브로시우스ㆍ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다.

1.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는 청년시절에 마니교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을 기록한 책이 『고백록』이다.

“내 『고백록』 13권은 나의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말함으로 정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자극하여 하느님에게 향하게 하는 데 있다.”

427년에 완성한 『재고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평가한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97년에 집필하기 시작해 400년에 완성한 『고백록』은 방탕한 생활로 절제함이 없이 살아온 33년간의 삶을 반성하고, 성직자로서 신자들을 하느님의 세계로 안내하며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여 올바르고 합리적인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으로 기독교 사상의 핵심인 천지 창조에 대한 해석, 신의 절대성에 대한 이론적 해석과 예정설 등을 다루고 있다.

『고백록』은 기독교 이외의 종교문명으로부터 그리스도교 문명으로 옮겨가는 시대에 살면서 한 사람의 내면에 깃들고 있던 고민과 마음의 괴로움, 기쁨을 기록한 책으로 인류 정신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고자 한 인간 내면의 버팀목이 되고 빛을 밝혀주는‘내면의 신’에 대한 사상은 후에 유럽 그리스도교 사상을 이룩하는데 기초가 된다.

2. 아우구스티누스와 종말론

중세는 고대 신비주의와 합리주의 철학을 이어 받아 신학 시대를 열게 된다. 이 중심에 최초로 그리스도교신학을 연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유다지역 작은 지방종교로 시작한 그리스도교가 그리스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고등종교인 보편적 종교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바울에서부터 시작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노력에 의해 학문 체계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제국 쇠퇴기에 태어났으며, 이 시기는 게르만족의 대 이동에 의해 고대 로마 문화가 붕괴되기 시작하였던 때로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청년기에는 마니교를 믿어 회의론에 빠지기도 하지만 신플라톤주의를 공부하여 그리스도교로 전향을 하게 된다.

신플라톤주의는 사상 면에서 마니교의 이원론과 아카데미의 회의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영적 실재를 발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며 또한 진정한 절대 진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감촉되어 깨달아 얻을 수 없는 합리적 진리를 알게 하여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데 영향을 준다.

그러나 플라톤과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형태가 하나님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영원한 형태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의존한다고 보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에서 얻은 것은 인간정신을 초월한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으로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인생 바깥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쾌락에 빠져 있던 그를 쾌락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든다. 물론 그가 그리스도교로 바꾸게 되었던 동기는 실제 신비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의해 그는 마니교 교리인 선 ․ 악의 이원론 사고를 받아들였고, 그노시스주의 교리인 지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신 야훼도 받아들인다.

또한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는 서로 다른 원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악은 선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 선이 결핍된 상태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중요한 점은 종말론(eschatology)에 있다. 그리스 사상에 종말론이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역사란 종말로 향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부터 역사는 비로소 목적과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근대 진보사상이 역사에 진보의 의미를 부여한 점인 것을 생각해볼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종말론 eschatology : 세계 및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이나 자연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종교적 견해.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세계를 선신(善神) 아프라 마즈다와 악신 아리만과의 투쟁으로 보고, 선악의 행위에 의한 사후심판 사상이 있어, 최후에는 아프라 마즈다가 승리하고 모든 혼은 불로써 깨끗이 씻겨져서 새로운 정의와 행복과 평화가 가득 찬 왕국이 온다고 믿었다.

이러한 종말관은 고대 유대교에 영향을 끼쳐, 그리스도교·이슬람교로 이어지는 같은 계통의 여러 종교에 전형적인 종말론을 형성시켰다.

유대교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후에 축복이 찾아온다는 사상에, 점차로 심판사상이 추가되어서, 바빌론 포로기에는 메시아(구세주)를 기다리는 사상이 확립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이것을 이어받아, 예수를 메시아로 간주했는데, 그의 재림과 종말에 관해서는 갖가지 사고방식을 낳았다. 종말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 먼저 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축복의 천년’이 찾아오고, 그 후 심판이 있게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된다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축복의 천년’의 왕국을 현실의 가톨릭교회에서 찾았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서 해석의 차이에서, 시간적인 미래에 종말을 보게 된다는 견해와, 종말은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견해로 나뉜다.

이슬람교에서는 사후 심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먼저 천재지변이 있고, 사자(死者)는 무덤에서 소환되어 선악의 행위를 저울질하여 심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앞서 말한 종교와 같은 종말론은 주장하지 않으나, 다만 석가의 설법에 따라 미래에 중생구제의 시기에 해당하는 미륵불의 시대에 대한 신앙이 있다.

한편, 종말론은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고, 내세관이나 타계관과 공통되는 면이 많으나, 지금 인간이 놓여져 있는 똑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최후의 상태로 보는 점에서 다르다.

1992년 한국에서 일어난 다미선교회의 휴거사건, 1994년 스위스에서 일어난 ‘태양사원’ 신도 집단자살 사건, 1995년 말에 다시 프랑스 남동부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태양사원 신도 떼죽음 사건 등은 종말론이 가져온 비극의 예들이다.

Ⅱ. 생각 확대하기

 

1. 로고스(이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인 로고스적인 생명체로 보았듯이 로고스는 스토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다.

로고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 로고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통하거나 관계하는 성질이 있고 인간은 동물이지만 로고스를 가졌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로고스를 가졌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사상으로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는 만민평등사상을 완성시켰으며 이들은 스스로 세계시민(cosmopolitan)임에 자부심을 느꼈다.

둘째, 로고스는 동물에는 이성이 없고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로고스는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고, 인간 외에는 신과 우주에만 로고스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인간은 신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는 높고 위풍 있고 정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스토아 stoa : 고대 그리스 건축의 열주랑(列柱廊).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는 아고라로 불리는 시민생활의 공공광장이 있었으며, 그 곳에 신전 ·회의소 ·보고(寶庫) 등과 나란히 스토아로 불리는 독특한 주랑(회랑)이 독립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한쪽의 주열(柱列)은 틔어 있고 다른 한쪽의 주열 사이는 석조로 벽을 쌓는 것이 보통인데, 그 중에는 주열의 수를 늘려서 작은 방을 줄지어 만들어 놓은 예가 많다.

기후가 좋은 그리스에서는 시민이 옥외생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고라에 모여 스토아의 그늘에서 대화를 나누고 뉴스를 교환하며 정치를 논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지탱하는 잠재력이 되었다.

벽에는 벽화가 그려졌고 작은 방은 상점으로 시장 역할을 하였으며, 때로는 재판도 하였다. 스토아학파의 명칭은 아테네의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제논이 강의를 한 데서 유래하며, 이것은 스토아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말해준다.

석주(石柱) 위에는 작은 목조 단층집이 많이 있으며, 그 중에는 이층으로 지은 것도 있다. BC 3세기경부터 ㄴ자형 또는 ㄷ자형으로 지은 스토아가 이오니아 지방에 많이 나타났다.

 

Stoicism : 키프로스의 제논이 스토아 포이킬레에 창설한 철학의 한 유파. 제논이 아테네의 광장에 있던 공회당 ‘채색주랑(彩色柱廊)’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제자들을 ‘스토아파’(주랑의 사람들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스토아파 철학은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고전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좋은 가문 출신 사람들의 철학이 아니라, 변경(邊境) 사람이나 이국인의 철학이었으며, 그리스 문물이 좁은 도시국가의 틀을 넘어서 널리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방에 미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철학의 여러 파와 스토아파 사이의 대립은 격렬하였다. 고전기까지의 철학의 여러 학설을 수용하여 일반화 ·통속화한 점에서 절충주의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 기반에는 고전 철학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애지(愛知:철학)는 논리 부문과 윤리 부문, 자연 부문으로 나뉘나, 이들은 각각 독립된 분파가 아니라 서로 나누기 어렵게 결합되어 있어 하나의 지혜를 사랑하고 구하는 애지를 구성하는 3요소가 된다.

지혜는 ‘신의 일과 사람의 일에 관한 지식’이라고 정의되지만, 이것은 사물에 관한 관조적 지식이 아니라, 인간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실천적 지식이다.

지혜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에 스토아파의 특징이 있으며, 이 원리에 바탕을 두어 스토아철학은 고대철학원리의 주체적인 반성철학이 되었다.

애지는 이러한 지혜를 습득하기 위한 ‘삶의 기술(ars vivendi)’의 연습이며, 이러한 재주를 갖는 사람이 현자인 것이다. 그리고 현자의 지혜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충동’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병으로서의 정념이 있다. 이 정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데에 ‘활달한 삶의 흐름’이 있다.

스토아파의 현자의 이상은 바로 거기에 있다. 스토익이라고 불리는 비정한 금욕주의적 심정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자의 유덕한 삶이란 이성을 갖춘 유한한 개개의 자연물(인간)이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그대로의 자기의 ‘운명’을 알고, 운명대로 살아감으로써 본원인 자연과 일치하는 ‘동의(同意)’의 삶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이성적 존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자기귀환에의 활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자는 모든 자연물의 근원인 자연 그 자체로서의 신과 일치한 자이며 신과 같은 자, 바로 신 그것인 것이다.

스토아 철학의 특징은, 이와 같은 자연존재에서의 개별성과 전체성의 두 계기의 강조와 양자의 긴장 관계에 있으며, 이것에 의하여 스토아 철학은 고대철학 원리의 집성인 동시에 다음 시대의 철학원리를 준비하는 것이 되었다.

언어연구 ·논리학 ·인식론에서도 구체성과 개별성을 중요시하는 스토아 철학은 전통철학에 없었던 새로운 요소를 많이 초래하였다.

2. 교부철학 (敎父哲學, patristic philosophy)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철학을 완성하고 근대철학의 기본을 세우기까지 거의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지만 새로운 철학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에 서 있던 스콜라철학을 비판하면서 중세 대표적인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등장하게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우리는 유럽인들이 진리와 법칙에 대해 깊이 연구했던 철학의 두 가지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았던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피고 찾았던 노력의 결과는 그리스도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상대하여 비교될 만한 것이 없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고대에서 시작된 지식을 중세까지 보존했던 곳은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의 정신세계는 수도원 안에서 순수하게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초로 유럽의 근대사상의 기운이 싹틀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교회에 대한 중심교리를 이론으로 정리하고 책에 기록하면서, 거룩한 성품으로 고상하고 순결한 생활을 위엄 있고 정중하게 하여, 교리와 신학을 수립한 지도자 및 저술가로 신도에게 모범을 보인 사람들을 교부라 부르며 존경하였으며, 교부의 저술에 대한 연구를 교부학이라고 한다.

교부는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문화와 예술을 환히 알았던 사람들로 고대문명이 남긴 가치 있는 문화나 전통 중에서 특히 시인과 철학가의 학설이 예수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두 제자를 가르쳤던 가르침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교리에 의해 고대 이교문명과 그리스 철학사상이 대립하게 되지만 이러한 대립을 느슨하게 만든 것은 교부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그리스도 사상은 하나의 종합적인 세계관으로 완성되고, 그 위에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체계가 세워지게 된다.

3. 기독교적 실존주의와 리좀

1) 수목적 樹木的 사유의 흔들림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과 3절에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빛으로부터 시작되어 물질로 다시 빛으로 여러 번 반복을 거듭하여 140억 년 전 지금과 같은 우주가 생성되었다.

여기서 빛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시간’이 최초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공간 또한 시간과 같이 탄생하게 된 것을 말한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시간’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해오고 있다. ‘시간’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성서적 시간 이해, 심미적 시간 이해, 그리고 우주적 ‘시간’(우주는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으며 시간은 팽창의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빅뱅이론.)의 이해이다.

우주가 빛으로부터 창조되고 ‘시간’이 시작됨으로부터 모든 물질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실존(實存 existence)’이라는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실존’은 ‘실존주의’로 나타나게 되는데 ‘실존주의’는 존재의 문제(존재론)를 지식의 문제(인식론)보다 철학적으로 중시하는 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시간과 존재에 관한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잘 나타나 있다. 『고백록』은 시간과 영원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그는 ‘영원과 시간은 본바탕이 다르다’면서 ‘영원은 초시간(超時間)이기 때문에 지속해 나가는 성질과 흐름을 가지지 않은 영원한 현재로서 하느님의 것이요, 모든 시간이 거기에서 솟아나는 움집과 같은 것이다’는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강조했다.

이는 인간이 시간에 종속된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봤을 때 신은 시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서유경,「아렌트 정치적 실존주의의 이론적 연원을 찾아서」, 『한국정치학회보』, 2002. 가을36집 3호, 4쪽.)는 정리가 가능하다.

즉 일자인 신에게 의지하고, 신에게 맡기고, 믿음으로 신을 받아들임의 수목적 사유인 기독교적 실존주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목적 체계는 위계적인 체계로, 의미화와 주체화의 중심을 포함하며, 조직된 기억과 같은 중심적 자동장치를 갖고 있다’(이진경, 『노마디즘1』, 휴머니스트, 2002, 109쪽.)와 같은 위계적으로 연결된 실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하 관계의 질서에 의한 물리학적 접근을 뉴턴의 고전 물리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으로 물질의 모든 입자는 다른 입자를 끌어당긴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그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함을 수학으로 보여 주었다.

또한 물체 운동에 의의를 덧붙여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여 운동과 중력의 원리를 우주로 확대 적용하여 모든 물체의 운동은 이 법칙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어긋날 수 없다고 보았다.

 

‘실존’(existenz, existence; 실제존재)개념의 실존철학화 :‘실존’의 인간개념화, existere는 ex_<로 부터>와 -sistere<존립하다>의 합성어로 existenz의 철학적 연원은 중세철학 existentia(실재)에서 비롯되며, 어원은 라틴어 existere<앞으로 나타난다>에서 유래된 것인데,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의 실존은 본질과 대립하는 뜻으로 본질(Sosein, Essenz; essentia)에 반대되는 한 사물의 실재(Dasein), 스스로의 근거에 의해 자립하게 된 존재자가 실제로 있는 것을 의미했다.

플라톤의 Idea개념을 빌린다면, 곧 본질이 Idea이고, 실존은 Idea의 현현(실제 나타남)인 것이다. 물론 실존의 의미를 더욱 더 소급해 올라가면 한 존재가 그 자리에 있다는 현전의 의미로 (par-)ousia를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이때 만일, 이 존재를 사물이 아닌 인간의 존재에 적용한다면, 인간의 경우는 인간 자신의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각자 자기의 본질을 나타나게 하려는 의도를 띄게 된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최초로 정립된 실존철학에서 실존은 존재론적 범위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에게 향하며, 고전철학의 ‘실존’이 지녔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실존에 대응하는 본질(essential)은 영원불변의 것을 가리켰다.

 

2) 리좀적 사유

우리는 이 세상을 1차원의 선, 2차원의 면, 3차원의 공간, 4차원의 시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현재계는 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4차원 세상이다.

우주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superstring teory)으로 11차원을 가설로 세우고 연구하고 있다. 물질은 분자와 원자로 원자는 가장 작은 소립자 단위인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쿼크는 끈과 같이 생겼다는 이론이다.

물질의 기본물질이 지금까지는 구(球) 형태로 이루어져있다고 여겨왔지만 초끈이론은 이 쿼크가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진동패턴에 의하여 물질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과 함께 디지털의 급격한 발전은 우리에게 실존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리좀(resume)(이런저런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것.)적 사유이다.

리좀의 몇 가지 특징들은 먼저 접속의 원리를 들 수 있다. 줄기들의 모든 점이 열려있어서 다른 줄기가 접속될 수 있는 것, 혹은 다른 줄기의 어디든 달라붙어 접속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접속한 줄기들이 어느 한 점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배타적(남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이항성도 작동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이질성의 원리가 있다.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허용함이다.

세 번째는 다양성의 원리다. 차이가 차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 동일자의 운동에 포섭되지 않는 것,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 일자로 포섭되거나 동일화 되지 않는 다양성(이진경, 『노마디즘1』, 휴머니스트, 2002, 91~101쪽.)임을 봤을 때 디지털 세계인 현재계의 실존적인 사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적 실존론인 수목적인 사유와 리좀의 현실적인 실존적 사유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목적 사유는 오직 하나인 중심, 오직 하나인 유일신인 일자로 소급되고 그 다양성 또한 모두 그 중심으로 환원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적 존재론은 신에게 의지하고, 신에게 맡기고, 믿음으로 신을 받아들임을 통해 신에게로 향한 우월한 통일성을 유지하게 된다.

 

초─이론 超─理論, super-string theory :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으로 보고 우주와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밝히려는 이론이다.

상대성이론의 거시적 연속성과 양자역학의 미시적 불연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론 후보 중 하나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양성자·중성자·전자 같은 소립자나 쿼크 등 구(球)의 형태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끊임없이 진동하는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보는 이론이다.

초끈이론은 끈이론에서 발전한 이론으로, 우주의 최소 단위가 마치 소립자나 쿼크처럼 보이면서도 이보다 훨씬 작고 가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어, 1차원적인 끈의 지속적인 진동에 의해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가정한다.

초끈이론에서는 끈들이 진동하는 유형에 따라 입자마다 고유한 성질이 생기고, 우주를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 보는 빅뱅이론과 달리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존재로 본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수많은 다른 우주가 각각의 물리법칙에 따라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우주의 최소 단위인 끈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어떤 특이성을 가지는지, 즉 우주가 왜 갑자기 성장을 하게 되었는지 등에 관한 이유를 입증하지 못해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이론으로 남아 있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마니교에서 그리스도교로 돌아섬

3세기경 페르시아로부터 시작된 마니교는 ‘빛의 사도’, ‘빛을 비추는 최고의 자’로 알려진 마니(Mani : 210? ~ 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된 종교이다.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기원전 6세기경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선·악 이원론을 가르치며 아베스타를 경전으로 함》. 배화교拜火敎), 불교의 여러 요소를 혼합하고 있다하여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에서 갈라져 나오고, 교리를 일관되게 정리하고 바로 세워 고유한 종교로 자리 잡게 된다.

유물론적 이원론으로 세상은 빛과 어둠의 투쟁 상태에서 생겨났다고 본다. 인간의 영을 어둠 속에 있는 빛으로 보았다.

배화교는 불을 공경하는 종교라는 뜻으로 자라투스트라교(영어식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약 1800년경에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투스트라에 의해 세워진 종교를 말한다. 기원전 600년경에 오늘날 이란 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그리스 지방까지 전해졌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 (Ahura Masda)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교리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에 영향을 주게 된다.

마니교 특징은 스스로 참된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데 있다. 마니교회에서 ‘선택된’ 고위 성직자들은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였으며 독신이었다. 육체적인 것은 모두 어둠의 세력에 봉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니의 선교 활동은 처음에는 방해를 받지 않았으나, 후에 페르시아 왕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후 마니교도들이 ‘빛을 비추는 자의 고통’ 또는 ‘마니의 수난’이라 부르는 26일 동안 재판을 받은 뒤 제자들에게 마지막의 이야기를 남기고 죽는다.

마니교는 간단명료한 교의(敎義)와 예배 양식, 엄격한 도덕계율이 있었다. 그 교의는 밝고 환함ㆍ어질고 좋음, 어둠ㆍ올바르지 않음의 유물론적 이원론과 진리에 대한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영지주의를 본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그노시스파라 하며 그노시스(Gnosis)는 ‘지식’(그리스어)이라는 말로 물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을 뜻하며, 그노시스파(Gnosticism)는‘지식’으로 육체를 초월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중심 사상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그노시스파는 극단적인 선과 악으로(이원론)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하고 있고 선한 신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지식인 영이 나오고 악한 신에게는 악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 나온다고 믿으면서 인간의 선한 영혼이 죄와 악으로 물든 육체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영지주의처럼 마니교는 인간의 영혼은 타락하여 악(물질)과 섞여 있지만, 영혼과 지혜는 이를 해방시킨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을 신화를 통해 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① 물질세계에 있는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들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맞서는 두 실체는 영혼과 물질, 선과 악, 빛과 어둠이다. 이들이 분리되는 과거 시기.

② 두 실체가 합쳐 하나로 모아지는 현재.

③ 본래 있던 2가지 특징과 성질이 새롭게 다시 만들어져 정해지는 미래.

신화에 따르면 떳떳하고 옳은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 천국으로 돌아가지만 간음ㆍ출산ㆍ소유ㆍ경작ㆍ추수ㆍ육식ㆍ음주 등 육체에 관한 것에 정신을 기울이는 사람의 육체는 연속되는, 즉 다시 살아남의 벌을 받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마니교에 9년 동안 생활하면서 신분이 낮은 집안 출신의 여자와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을 몹시 아꼈다. 이후 낮은 직책인 상대편이 하는 말을 듣는 직분을 받아 결혼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마니교에 대한 열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니교 지도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물음에 정확한 답변하지 못해 지적 수준의 낮음을 드러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실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반(反)영지주의로 돌아서게 되며 로마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게 된다.

 

영지주의 gnosis : 영지(靈知) 또는 인식, 깨달음. 어원은 그리스어로서 인식, 앎, 지식 또는 깨달음[覺]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 종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 때문에 보통 그노시스, 영지라고 한다.

그노시스는 구원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믿음과 대등한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믿음보다 더 중요하고 앞설 뿐만 아니라 믿음을 능가하는 높은 차원의 단계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과 이론이 생기게 되었고, 또 온갖 가정과 추리가 속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노시스는 그 단어가 지닌 복합적 의미 때문에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초기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천상적 신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을 그노시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반면 이단학파에서는 이를 밀교적 인식으로 이해하여 선택된 소수만의 특권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 그노시스주의자인 발렌티누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요소, 즉 물질과 정신,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

여기서 영적인 요소는 하느님도 모르게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이 영적 요소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내적인 힘이며 원동력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을 통하여 물질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도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노시스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노시스 사상의 체계는, 첫째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어질 수 없는 심연의 관계에서 우주를 고찰하고, 둘째 제2급의 신에 의해 창조된 물질은 무질서에 의한 싸움과 타락 등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악이라는 것이며, 셋째 인간은 대부분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졌으나 그 중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영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그것이 바로 구원과 해방의 원동력이라는 것, 그리고 각 차원의 세계에는 모두 중개자가 있어 이 중개자를 통하여 상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교에서부터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그노시스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동방의 종교 사상과 이교 철학, 그리스 신화, 점성학 등의 내용이 그리스도교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으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매력을 주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또한 우리에게 성부를 계시하였다. 이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 그노시스주의는 오랫동안 교회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는 요한의 복음서의 말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의 ‘그리스도교인은 참된 지식, 즉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정통적 입장에서의 그노시스와 이단 사상의 거짓 그노시스주의를 뚜렷이 구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 그노시스주의가 이단으로 탈선하게 한 것은 이레나이우스 등의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그노시스주의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 요소인 예수의 강생 그 자체와 의미를 부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성(人性)을 취한 구원의 방법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3세기 이후,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기초로 전개해 오는 사상 체계로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스토아 학파 등 고대 여러 학파의 사상 종합화 위에 성립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이데아계-현상계라고 하는 플라톤적 2원론을 계승하고 있으며, 특히 전자를 세분화하여 전 존재를 계층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데 특색이 있다.

신플라톤주의는 그 학파로서의 존재는 529년 유스티니아누스제에 의한 이교도의 학원폐쇄령과 더불어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 사상 자체는 중세·근세를 통해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었다.

르네상스에 있어서의 플라톤주의 부흥이라 일컬어지는 것도 실제 내용은 신플라톤주의의 색채를 농후하게 갖는 것이었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로티노스의 경우를 예로 들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즉 이데아계와 현상계로 2분(二分)하고, 전자 중에 ‘1자(일자)’(토·헨), ‘누스’(지성 내지 정신), ‘프시케’(영혼)의 3원리를 설정한다.

이 ‘1자’에 관해서는 ‘선한 것’ ‘단순한 것’ ‘자족적인 것’ 등 갖가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명확한 규정이 불가능한, 오히려 “그 무엇이 아닌가”라고 하는 부정적인 형태로밖에 말할 수가 없는 온갖 존재의 구극적(究極的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 원리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1자’의 발상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나 있는 현실(현실계)의 배후에는 무엇인가 그것을 통일하는 구극적인 ‘1’(‘多’에 대한 ‘1’)이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적 전제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더욱이 이러한 3원리는 각각 독립된 실체는 아니고 ‘1자’로부터 유출(流出)되어(에마나티오) 생겨난 것이라고 되어 있어 동적(動的)인 관계에 있어서 통일적으로 포착되고 있다(‘일자’→‘누스’→‘프시케’).

즉, 불이 열을, 얼음이 냉을 발산하고, 인간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 물건(物)은 자신이 성숙·충실해지면 자기와 동형(同形)의 물건을 산출하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충실해진 ‘일자’로부터 ‘누스’, 다시 ‘누스’에서 ‘프시케’가 산출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프시케’에는 ‘이데아계’(英智界)와 그 그림자인 ‘현상계’를 연결하고 양자를 매개하는 기능이 주어지고 있다.

또 이와 같은 ‘일자’로부터의 것의 산출·유출의 길과 동시에 일체의 것의 일자에의 환귀(還歸) 과정이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체계는 플라톤적인 ‘이데아계(英智界)’에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운동·생성의 견해와 스토아적인 통일된 하나의 생명체·유기체로서 우주를 보려고 하는 관점 등을 도입하여, 그렇게 함으로써 플라톤적 2원론이 갖는 모순(상호간에 따로 존재하는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어떻게 결합하여 관련을 맺게 할 것인가)의 한 가지 해결책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또 ‘1자’ ‘누스’ ‘프시케’의 3원리는 인간의 의식 내 사고(思考)의 반영 내지 산물로 생각되고 있다. 즉 현상계의 다양성이 의식 내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가는 단계를 3원리는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3원리는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결국 이와 같은 체계를 구상함으로써 초월적 절대자와 유한존재 인간의 신비적 합일을 의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3원리는 초월적인 실체로서 생각하게 되어 절대자(‘토·헨’, 그 밖에 갖가지 명칭으로 불린다)를 정점으로 하는 존재의 계층단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되었다.

 

Enneades : 플로티노스의 만년의 저서 54편을 제자인 폴리피리오스가 체계적으로 편집한 철학 저서. 6권. 권마다 9장(章)으로 되었다.

『덕(德)에 관하여』, 『신의 섭리에 관하여』, 『영혼불멸에 관하여』 등 주제(主題)는 다양하나 그 중에서도 『미(美)에 관하여』가 유명하다.

일자야말로 진실재(眞實在)로, 그것은 미 그 자체이고 빛이며, 사람은 테오리아(theoria:觀想)에 의해 질료의 어둠으로부터 일자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신플라톤주의는 이 세상은 절대적인 하나로부터, 하나의 줄기로 흘러나오는 과정을 거쳐, 생성 되었다는 영적 일원론으로 오직 하나의 실체만 인정했듯, 초월자인 일자로부터 자기의식을 가진 정신은 나오며, 그 정신으로부터 영혼과 생명이 생성된다고 생각했던 주의이다.

여기서 영혼은 정신과 감각 사이에서 매개물로 작용한다. 일자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감각은 물질로 일자가 만든 맨 마지막의 것으로 아무런 가치나 의의를 가질 수 없다.

한편 일자는 실재로 존재 하면서 선이 되지만, 악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결국 일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물질로 무형의 물질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악이란 모든 사물의 최소한의 가능성이요, 선의 결핍인 것이다.

한편 신플라톤 신비주의는 내부가 외부보다 뛰어나다는 근본적인 법칙으로 선에 이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과정의 막바지인 현실에 존재하기 위해 도달하는 정신은 인간의 가장 깊은 자아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백론』 제7권에 정신적, 심리적으로 깊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과정을 거쳐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안에 존재하며 동시에 초월적인, ‘변하지 않는 빛’으로 하느님은 판단ㆍ추리 등 사유작용을 거치지 않고, 우리에게 직접 진리와 선을 알려주는 근원적 존재이다.

즉 하느님의 발견은 합리적인 추리에 의한 결론으로 얻어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이론과 인식을 초월한 체험으로,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접촉이었다.

하느님을 발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랜 의문을 풀었다. 그것은 하느님은 빛이며 악은 어둠이었다.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빛은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정신(영적)의 실체이다. 어둠은 실체가 아니다. 어둠은 빛의 결핍이기 때문에 악은 실체가 될 수 없다.

3. 아우구스티누스 인식론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만이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성만으로는 진리에 대한 인식의 길로 이끌 수 없다.

“신앙은 신의 탐구에 앞선다” “신앙은 신을 추구하고, 지성은 신을 발견한다”와 같이 그리스도교와 신플라톤주의를 결합하여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찾았다. “만일 우리가 믿지 못하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Credo ut intelligam 크레도 우트 인텔리감)”

 

1) 참된 행복

진리에 대한 인식을 하나의 목적인 더없는 참된 행복의 관계에서 보고 있다.

행복은 현명한 자만이 얻을 수 있으며, 예지(豫知 foreknowledge 선견, 미리 앎. 예견 豫見)는 진리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2) 지식(scientia)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지성이 감각적 대상과 감각 작용에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빛의 굴절현상을 예로 들어 감각의 시각과 지성의 판단의 관계를 말한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생명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물들에서 뿐만 아니라 감각 자체까지 판단을 내린다.

물에 잠긴 노가 똑바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꺾여 보이는가? 왜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가? 눈의 시각은(보이는) 그것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감각을 가지고 있는 생명이 사물보다 훨씬 뛰어나듯이, 이성적인 생명은 그 감각과 사물보다 분명히 뛰어나다.” 즉, 지성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 처음엔 감각을 사용하지만 마지막 판단은 이성이 내리기 때문이다.

물속에 있는 노는 꺾인 모습으로 시각에 전달하지만 물속에 있는 노는 사실 굽어 있지 않으며, 단지 빛의 굴절로 꺾인 모습으로 보인다고 수정하여 판단하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식(scientia)이라고 했다.

 

3) 경험과 인식

우리는 실재하는 존재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가. 아니면 확신은 구체성이 없고 현실과 동떨어져 막연한 원리와 수학적인 원리에 제한되어 정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적어도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고 답한다.

가령 인간이 다른 피조물이나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감각과 인식

최초 인식 단계는 감촉되어 깨달음에 의존하는 인식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영혼론에 기초하여 감촉되어 깨달음의 작용은 감각 기관을 도구로 사용하는 영혼의 행위로 보았다.

감각은 인간이나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인간은 사물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실제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없는 인간만의 특유한 것이다.

4.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유럽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지만, 더 이상 새로운 철학체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현실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당시 철학자 또한 현실적인 개인적 생활양식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헬레니즘시기부터 로마 제국시기까지 형성되었던 철학은 에피쿠로스(Epikuros)학파와 스토아(Stoa)학파가 있다.

쾌락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피타고라스 출생지인 이오니아 사모스(Samos)섬에서 태어난 그리스 철학자로 데모크리토스 학파(원자론을 창시한 학파)인 나우시파네스에게 철학을 배웠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에피쿠로스학파는 유물론적 원자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의 근본인 우주 만물의 마지막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물질로 보고, 유물론 이론을 완전하게 만들어 나간다. 에피쿠로스의 생각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미묘한 존재이지만 여전히 물질상태에 있다고 봤던 것이다.

영혼은 몸과 같기 때문에 나눌 수 있고 또 언젠가 죽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물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은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감각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 나타나는 가치판단 기준은 쾌락(pleasure)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감각주의 요소는 쾌락의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어 금욕주의였던 스토아학파로부터 ‘돼지들’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겸손함과 온화하고 부드러움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절제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을 ‘정원의 철학자들’이라고도 부르며 이들은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이전 철학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한편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죽음은 혼을 만든 원자가 불규칙하게 흩어지는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신은 무엇인가란 물음에 에피쿠로스는 신이란 가장 작은 원자로 된 것이며 세계와 세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도록 떼어 놓는 장소에 머물러, 인간과 사물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런 생각 끝에 에피쿠로스는 철학 연구주제를 어떻게 하면 인간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모아졌다. 쾌락을 ‘고통이 없는 마음의 상태’, ‘마음의 동요에서 해방되는 것’, ‘마음의 평정’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 마음을 혼란시키는 여러 가지 생각을 억견이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잘못된 사고방식인 억견으로부터 벗어나 사물의 참된 모습을 전하여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억견(臆見, doxa)이란 플라톤이 사용한 용어로 일종의 판단력을 말한다.

그리스어 dóxa에서 유래하였으며, 억견은 감각이나 지각보다 넓은 대상을 감지할 수 있지만 지식이나 사고(思考)와 비교하면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이보다 못함을 뜻한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해 속을 태우고 괴로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을 때가 되어 죽게 된다면 이미 나(我)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근본을 연구한 쾌락이란 주색에 빠져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쾌락이 아니라 고통과 무질서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마음을 신이나 죽음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풀어 영혼을 자유롭고 평안하게 가지는데 있었기 때문에 은자풍 쾌락(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상태)이라 불린다.

이러한 고요한 혼의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흔들림은 그리스어로‘타락스tarax’)라고 불렀으며 일시적으로 눈앞에 있는 이익만 쫓아 참된 쾌락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타락시아는 종교에서 고요히 생각함과 같은 경지로 에피쿠로스 또한 몇 번에 걸쳐 종교적 명상의 상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아타락시아는 타락스의 반대 개념이다.

 

스토아학파

고대 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는 얼마 가지 못하고 그리스 반도를 지배한 세력인 늑대 형제의 후손들에 의해 로마가 세워진다. 이로 인해 사회 발전은 진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어 아테네 사회는 명랑하고 활발함을 잃어 갔다.

로마의 거대한 권력에 의해 시민들은 그들이 지닌 능력을 잃어 갔으며 의기소침해져 갔던 것이다.

이런 환경이 계속되자 마음의 평정을 목표로 하는 개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로고스(logos 이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로마시대 양심이라 불리는 철학 유파인 스토아학파가 출현하게 된다.

스토아(stoa)는 사람들이 모이는 ‘강당’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로고스에 따라 살아간다’는 생활목표로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한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은 자연과 같은 존재로 모든 인간은 같다’라는 사상을 싹트게 하여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열었으며 로마제국의 도덕사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은자풍인 에피쿠로스학파와 비교해볼 때 스토아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선善의 이데아」사상까지 계승한 철학으로 자리 잡아 로마제국의 보편적 사상으로 뿌리 내리게 된다.

Ⅳ. 생각 찾아보기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수(數)는 매우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는 『티마이오스』에 나타난 플라톤의 견해를 받아들여 수를 신의 천지창조에 대한 근본 원리로 간주하였다. 모든 것은 수에 의존한다. 대상은 오로지 수의 속성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수는 존재와 아름다움 양자에 근본적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특정한 의도나 목적 없이 단지 즐거움을 위해 팔을 움직인다고 가정해 보라. 그것은 춤이 될 것이다. 춤의 무엇이 당신을 즐겁게 하는지를 물어 보라. 그러면 수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자, 나 여기 있소.’ 신체 형태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이 수에 따라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신체 동작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이 수에 따라 적절한 시간대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수는 질서에 대한 근본 원리이며, 질서는 여러 부분들을 어떤 목적에 부합하게 하나의 통합된 복합체로 배열하는 것이다. 질서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Timaios : 플라톤의 자연학에 대한 대화편. 원래 이 대화편은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를 포함하는 3부작의 첫 부분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한 저작은 『티마이오스』뿐이다. 주제는 물리학·생물학·천체학 등과 관련된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우주는 지성에 의해 파악된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 원리가 발견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우주가 지성적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최고의 이데아는 선(善)의 이데아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선의 이데아를 통해서 자신의 완전성을 구현하게 된다. 이것은 우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선의 이데아가 창조의 원리가 된다. 이 원리를 의인화 한 것이 『티마이오스』에서 우주의 창조자로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이다.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 '창조하는 자'를 뜻한다.

그는 무엇을 창조하든 '좋음'을 실현하는 자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은 무엇을 본뜨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주도 어떤 존재하는 원형의 모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은 자신의 우주론을 우주에 대한 참된 설명이 아니라 모상에 어울리는 설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물·불·공기·흙이다.

그러나 그는 고대의 원자론과 달리 이 요소들에게 실체의 성질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단지 속성들에 불과하여 기하학적 형태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실체적 원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아무런 규정도 받지 않은 어떤 것들이 수학적 질서를 부여받아 구체적 사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학적 비례, 비율, 도형, 수, 모자름과 지나침 등의 수학적 개념이 세계를 지성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좋음'이라는 가치 개념은 결국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지성적 개념인 것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수학적 질서에 근거하여 힘, 시간과 같은 물리학적 문제들과 인체의 구조, 기관 등의 생물학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플라톤은 이 우주가 지각될 수 있는 신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유일한 천구라는 말로 『티마이오스』를 끝맺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 정신적 가치가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이 대화편은 수세기 동안 서구의 우주관을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