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미국에 한국선교를 요청한 한국인 -이수정
19세기 말 한국에 개신교 선교는 세가지 각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첫째는 국내에서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주장했던 개화파와 둘째는 만주에서 로스의 성경번역을 돕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셋째는 일본에서 이수정의 활동입니다.
이수정은 대원군때 많은 친척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1881년 일본의 선진농업을 전수받기 위해 신사유람단으로 파견을 갔다가 개신교 지도자들 및 미국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 예수를 믿고 1883년 4월29일에 미국 선교사 조지 낙스로부터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에 있는 미국 성서공회 헨리 루미스 선교사로부터 한글 성서번역을 의뢰받고 성경번역에 착수합니다. 그의 노력으로 한문성경에 토를 단 현토성경<신약성경 마가전>이 1884년 11월에 출판되었고, 현토 신약성경이 1887년에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순수한 우리말 성경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1885년 2월에는 요코하마에서 1천부의 우리말 성경도 발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농업기술의 전수나 서양 기술 문명의 전수가 아닌 민족의 복음화라 확신하고 자신이 만나는 일본주재 미국 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를 간곡히 부탁하는 선교동원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선교잡지인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1884년 3월호에 그의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그의 편지의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요코하마 1883년12월13일
......우리의 조국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아직 참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있으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복음전파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눈에 띄지 않는 지구촌의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기독교의 축복을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나의 동포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이미 세례를 받았습니다. ....귀국은 기독교 국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면, 나는 다른 민족들이 교사들을 보낼 것이라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가르침들이 주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나는 별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보내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이 편지는 미국교회 교우들에게 한국 선교를 호소하는 공개편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편지는 그가 세례 받은 지 1년도 안되어 쓴 편지였습니다. 실제로 이 수정의 편지를 받고 미국의 유망한 젊은이들이 한국 선교를 결심하고 몇 년 뒤 한국으로 발을 옮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편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을 향해 오던 중 요코하마에 들려 이 수정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포켓에 들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도 선교지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읽고 한국선교를 결단했으리라 생각됩니다.
19세기 말 한국에 개신교 선교는 세가지 각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첫째는 국내에서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주장했던 개화파와 둘째는 만주에서 로스의 성경번역을 돕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셋째는 일본에서 이수정의 활동입니다.
이수정은 대원군때 많은 친척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1881년 일본의 선진농업을 전수받기 위해 신사유람단으로 파견을 갔다가 개신교 지도자들 및 미국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 예수를 믿고 1883년 4월29일에 미국 선교사 조지 낙스로부터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에 있는 미국 성서공회 헨리 루미스 선교사로부터 한글 성서번역을 의뢰받고 성경번역에 착수합니다. 그의 노력으로 한문성경에 토를 단 현토성경<신약성경 마가전>이 1884년 11월에 출판되었고, 현토 신약성경이 1887년에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순수한 우리말 성경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1885년 2월에는 요코하마에서 1천부의 우리말 성경도 발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농업기술의 전수나 서양 기술 문명의 전수가 아닌 민족의 복음화라 확신하고 자신이 만나는 일본주재 미국 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를 간곡히 부탁하는 선교동원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선교잡지인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1884년 3월호에 그의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그의 편지의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요코하마 1883년12월13일
......우리의 조국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아직 참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있으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복음전파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눈에 띄지 않는 지구촌의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기독교의 축복을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나의 동포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이미 세례를 받았습니다. ....귀국은 기독교 국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면, 나는 다른 민족들이 교사들을 보낼 것이라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가르침들이 주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나는 별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보내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이 편지는 미국교회 교우들에게 한국 선교를 호소하는 공개편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편지는 그가 세례 받은 지 1년도 안되어 쓴 편지였습니다. 실제로 이 수정의 편지를 받고 미국의 유망한 젊은이들이 한국 선교를 결심하고 몇 년 뒤 한국으로 발을 옮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편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을 향해 오던 중 요코하마에 들려 이 수정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포켓에 들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도 선교지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읽고 한국선교를 결단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