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봄비/정한용

헤븐드림 2013. 3. 2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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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정한용

강을 건너자 비가 가늘어졌다
산발치에 닿아선 하늘까지 맑아졌다
땅은 이미 충분히 젖어
검고 부드럽게 나무뿌리에 담았던 향을 풀어냈다
포크레인이 모래흙 한무더기
내 키만큼 쌓아놓은 뒤였다
새로 파낸 사토는 새 봄비를 맞아 빛이 더 맑았다
이미 마음을 궁글렸으니
세상 전부가 함께 묻힌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흙을 가리고 방향을 잡아 자리를 정한 다음
조용히 내려놓았다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세계로 들고 있었다
구름 걷히고 햇살 펴지면서 흙내음 진한 달구노래 들렸는지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 후 어찌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포르릉 산새가 날아간 것인지
산역을 마친 이들이 햇무덤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문득 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상처가 아리다는 걸 느꼈다
봄비 걷히고
내 알몸 위로 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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