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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톨스토이 명작을 어린이 도서관서 치우는 이유

헤븐드림 2025. 3. 8. 11:28

▲수도 키이우에 거주하는 선교사가 지난 2월 25일(현지시간) 촬영한 사진. 거주지 근처에 드론이 떨어져 화재가 발생해 1명 사망, 1명 실종이 보고됐다고 한다. 휴전회담이 거론되지만, 우크라이나는 아직 전쟁 중이다. ⓒ김평원 선교사

 

 

2. 슬라브 중심주의와 서구 중심주의의 갈등과 충돌(계속)

구소련 붕괴는 러시아의 붕괴를 의미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15개 국가가 새로운 독립국가와 자주국가를 세울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의미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재빠른 독립선언이 있었다. 발틱 3국 및 동유럽 국가들은 발빠르게 서구주의를 표방하며 유럽연합에, 나아가 나토(NATO) 군사동맹에도 가입하기 시작했다.

옐친 대통령은 속수무책으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동독 파견 KGB 요원 출신으로 구소련 붕괴와 동/서독 통일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구소련 붕괴라는 혼란과 옐친 정부의 집권 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러시아를 뼛속 깊이 체험하며 그는 ‘위대한 러시아 재건’이란 대망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에 이 시절 한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택시운전을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쨌든 영악한 푸틴은 칼을 갈기 시작했고,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이어 러시아 대통령직에 집권하자마자 올리가르히(신흥자본가)로 대변되는 서구 세력과 서구주의자들에게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그에게 서구 세력은 러시아의 자원을 훔쳐 서구 세력들에게 갖다 바치고 러시아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민족의 반역자들로서, 반드시 청소해야 할 쓰레기 같은 세력이었다.

 

푸틴의 이너서클들도 반서방 친슬라브주의자들로 채워졌고, 그 중 상징적인 인물이 푸틴의 정신적 고문들 중 한 사람으로 유라시아 당 지도자로 활동하는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이다. 그는 이번 전쟁 중 폭발사고로 딸을 잃었다. 이들에게 있어 ‘루스키이 미르(영어 Russian world)’ 또는 ‘러시아적 평화’로 표현되는 슬라브주의에 반하는 서구 가치적 추종 세력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할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에서는 정당한 시위나 합법적 인권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게 됐고, 서구적 자유 인사들에 대한 협박, 감금, 살해 등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푸틴의 반서방·친슬라브 이념의 점차적 고착화는 러시아로부터의 진정한 독립과 자주를 염원하며 서구화를 지향하던 우크라이나에게는 치명적 고난으로 작용하게 된다. 영토 규모와 인구, 그리고 경제 규모 면에서 우크라이나에 미치지 못하던 발틱 3국 및 동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유럽연합 및 나토에 가입하던 중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비토에 번번히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2008년 4월 부카레스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잠시 들러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위한 중요한 결정을 할 테니 잘 준비하라”고 언질을 준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특수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고자 할 시 묵과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강력한 항의에 프랑스 및 독일 등 나토 유럽 주축국들이 동조함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공개되면서, 나토와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의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된 결과만 낳게 된 것이었다.

▲유럽(EU) 정상들이 전쟁 3주년을 맞아 키이우에 모여 우크라이나 지원과 안보 보장을 협의하는 모습. ⓒ김평원 선교사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바구니’라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비옥한 광대한 토지와 풍부한 광산물 및 인적 자원을 지닌, 얼마든지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중심으로 번영하던 고대 키예프 루시 공국 역사(882-1240)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13세기 말 타타르 몽골의 침입으로 키예프 루시 공국이 패망하고 지역 패권이 모스크바로 옮겨지게 된다. 이후 지난한 역사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이 비옥한 나라를 차지하려는 러시아 및 주변 유럽 강대국의 끊임없는 외세 지배 속에 결국 20세기 들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명으로 구소련 연방 체제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이의 종언과 함께 1991년 8월 24일 실제적 독립국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동서를 양분하는 드니푸르 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제정 러시아가, 서쪽은 유럽 국가들이 지배했던 역사로 동-서 간의 분열이 심해 통합된 국가 형성의 어려움을 많이 겪어 왔다.

많은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이 국가 형성이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러시아’를 지적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한 묶음으로 포장했던 지난 역사와 정신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독립도 발전도 요원하다”고 믿고 있다. 즉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슬라브주의의 잔재를 말끔히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련없이 유럽의 일원으로서 서구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구소련 붕괴, 즉 바르샤바 체제 해체 이후 러시아와 함께한 나라와 유럽과 함께한 나라들을 비교해 보라고 일갈한다. 러시아와 함께한 나라는 여전히 부정부패와 가난에 시달리고, 준독재 체제와 관료주의와 억압 속에서 자유를 말살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이란화, 심지어는 북한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그러한 체제 속에서 살게 하고 싶거든 러시아와 함께하는 것을 지지하라고 호통친다.

필자는 전쟁 개시 1년여가 지난 뒤 한국 유수의 신문사 기자와 함께 전쟁 상황 속에서의 어린이 교육실태를 취재하고자 키이우 어린이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도서관에서는 많은 책들을 불태우고자 도서관 한쪽에 모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톨스토이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문호의 책들도 있었다.

깜짝 놀라 “이런 귀한 책들을 불태우면 어쩌자는 것이냐?” 물었더니, 도서관장은 “이런 책들 내용을 우리 같은 제3국 사람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본인들은 이러한 책들의 내용 속에 슬라브주의 예찬과 서구주의에 대한 반감을 은연 중 주입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세계적 대문호’라는 명성에 관계없이, 자라나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어린이 도서관을 파괴하는 것이며, 이는 또 다른 형태로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 가해지는 문화 전쟁이자 폭력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과 살육의 뒤쪽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도 이러한 사상과 이념, 문화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생각에 섬뜩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 정권(슬라브주의자)과 친서방 정권(서구주의자)의 교체 속에 두 차례 혁명, 즉 오렌지 혁명(2004년)과 마이단 혁명(2014년)을 경험했다. 친러 정권을 붕괴시킨 마이단 혁명과 직전 대통령 포로셴코의 친서방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다. 그리고 현 대통령 젤렌스키의 나토 가입 추진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과 함께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전쟁 3년 관련 보도.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다. ⓒ유튜브

 

물론 나의 형제요 아버지와 자식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 죽어가는 상황에서, 전쟁의 원인이나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이미 확고한 것처럼 여겨졌던 국가 간 약속인 민족자결주의와 국제법의 원칙,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의 이름으로 푸틴을 비롯한 전쟁 세력을 향하여 강력한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주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그래서 허공에 외치는 소리라 할지라도 읍소의 목소리로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며 무고한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을 나게 하는 짓, 이제 그만 좀 하세요! 하나님이 두렵지 않고 역사가 두렵지 않나요?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도 힘이 부치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한편으론 세계 제2의 군사대국 러시아에 결사항전으로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정신과 낙관성이 나름 우크라이나를 안다고 생각했던 필자를 놀라게 했고, 때로는 어리둥절하여 어이없는 쓴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한국에서 온 기업가들과 키이우의 중심거리 흐레샤틱 2층 식당에서 상담을 하고 내려오는데, 1층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미사일이 날아다녔고 오늘은 정전으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요란한 가운데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통 속담에 “우크라이나를 집어 삼킬 수는 있지만 소화는 시킬 수 없다. 결국 내뱉는다”가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도 “코사크의 우크라이나 정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끝맺고 있다. 이들은 정말 이 말들을 믿는 듯하다.

어쨌든 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맺는 과정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이 땅에 발디딘 한 사람의 선교사로서, 하루빨리 두 나라가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의 노선 차이를 극복하고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말씀하지만, “내(예수 그리스도)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도 증거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님의 강권적 개입으로 죽음과 파괴, 그리고 도적질 등 사단의 올무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백성들이 서로를 유익한 존재로 간주하며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그러한 축복된 관계가 되는(출 19:5, 6), 이 땅에서의 예수 혁명의 꿈과 비전을 그려본다. 그리고 울며 고난당하는 이 땅의 양무리들을 향해 보내심을 받은 목자요 한 사람의 선교사로서, 우리의 선한 목자장 되시는 주님께 무릎 꿇고 끊임없는 질문을 드려 본다.

“주님! 주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조금이라도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전쟁 3주년을 맞아 키이우 독립광장 전쟁 사망자 추모 장소에서 헌화하는 EU 정상들과 캐나다 총리. ⓒ김평원 선교사

3. 나가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단순히 보이는 영토 및 지역 패권 전쟁을 넘어, 그 이면에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간의 가치 및 이데올로기 전쟁 및 양대 진영의 ‘문명의 충돌’이 자리잡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무너지면 유토피아의 세계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러-우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보여주듯, 민족과 종교,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국지적 분쟁을 통한 ‘문명의 충돌’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극체(bi-polar system) 종식과 함께 미국과 자본주의라는 단극 체제와 이념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 상황이다. 그러나 현 러-우 전쟁이 보여주듯, 세계의 패권 질서를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multi-polar system)로 전환시키기 위한 갈등과 충돌 속에 세계의 패권질서와 문명 정체성을 둘러싼 분쟁과 충돌은 기술혁명과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일상의 모습을 바꿔 놓을 것이다.

평화롭고 목가적이기만 했던 우크라이나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로 변해 있을 줄이야! 자폭용 드론과 미사일 폭발음이 요란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필자 또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이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가치관 및 정체성의 전쟁, 세계관 전쟁, 세속화 전쟁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 하신 주님 말씀대로, 정말 우리 모두 깨어 기도해야 할 이 때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서(right now & here)임을 절감하게 된다.

▲2023년 1월 본지와 인터뷰했던 김평원 선교사. ⓒ크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