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은총

기도/홍수희

헤븐드림 2024. 7. 16. 04:15

 

 

기도/홍수희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꽃밭에 꽃이 피면
내 마음 그 찬란한 꽃잎이 아닌
꽃대궁을 받쳐든 말없는 그늘이게 하소서

당신의 뜨락에 새가 울면
내 마음 소리 높여 지저귀는 노래가 아닌
그 음계(音階)를 받쳐든 잔잔히 술렁이는 가지이게 하소서

어두움이 깊어갈수록 빛깔이 짙어지는 별빛처럼
실눈을 뜰수록 거울을 닮아가는 둥근 보름달처럼

고개를 숙이고야 숙인 만큼 더욱 붉어지는 노을처럼
내가 작아지는 만큼 점점 커져 오르는 그리움처럼

사랑은 비로소 가진 것을 한없이 내어줄수록
더욱더 차 오르는 요술 항아리

사랑은 마침내 고독의 겨울을 사르고서야
눈부시게 도착하는 하나님의 봄빛 연서(戀書)

그러하오니 주여,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가장 초라한 손을 내가 먼저 따뜻이 잡게 하시고
가장 누추한 가슴을 내가 먼저 설레며 방문하게 하시어

이 세상 가장 슬픈 귓가에
먼저 가 닿는 나 은은한 종소리가 되게 하시고

이 세상 가장 음습한 골짜기에
먼저 가 닿는 나 넘치는 햇살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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