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시인(1903년 ~ 1950년)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대 「독(毒)을 차고」,「가야금」, 「달마지」,「춘향」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많이 발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지조있는 시인으로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기도 했죠.
8.15 광복 후 보수파 정치인으로서 정계에 입문하여 1945년 고향 강진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대동청년단 지단장에 취임하였지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성향에 질려
금방 그만두게 됩니다.
그 후 이승만 정권의 공보수석비서관이던 시인 김광섭의 권유로 출판국장을 맡았지만,
친일파들 천지인 중앙청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다 6개월만에 그만 둡니다.
강진의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덕분에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다가 서울특별시 수복
다음날이었던 1950년 9월 29일에 유탄을 맞아 사망합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꿈 밭에 봄 마음> 등이
있습니다.
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세련된 시형과 율격으로 섬세하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고운 어조로 표현한 것이 시인의 특징입니다.
초중반기까지는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운율이 살아있는 서정적이고 세련된 시를 여럿 발표했지만,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고 폭압적인 체제하에 놓이면서 저항적이고 날선 느낌으로 변하는데요.
일제의 회유와 협박이 거세지면서 1940년 절필을 선언한 시인은 해방이 오기까지 일본어로 된
단 한줄의 글조차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일화들로 2008년 금관문화훈장, 2018년에야 건국포장을 받으며 뒤늦게 인정을 받게 된
애국 시인입니다,
- 나무위키, 두산백과 자료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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