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Art Salon] ‘하이브리드’적 미술관 관람…인문학으로 살핀 명화의 숨은 이야기

헤븐드림 2023. 3. 10. 06:52

 

우리에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린 아름다운 명화들이지만, 사실 그림 속에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수많은 힌트가 숨겨져 있다.

명화 한 점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림만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세계가 엄청나게 확장된다. 예나 지금이나 초미의 관심사인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 살롱에서 시작된 예술가와 철학자에 대한 후원이 결국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게 된 과정, 살롱 이후 예술 혁명의 산실이자 삶의 애환이 담긴 카페의 존재 의미, 먼 곳을 동경하는 낭만적 기질을 지닌 예술가들에게 여행이 주는 의미 등 <아트살롱>에서 발견한 미술사와 인문학의 결합은 흥미롭기만 하다. 소소하지만 그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는 알 수 없는 코드들을 하나하나 해석해보면 그림에 얽힌 배경과 일화들이 사슬처럼 엮이며 일종의 드라마가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림들에 숨겨진 인문학적 코드를 짚어가는 ‘하이브리드’적 관람을 지금 시작한다.

 

결혼은 진화하지 않는다

윌리엄 호가스, <최신식 결혼-결혼식 후>, 캔버스에 유채, 70X91cm, 1743, 런던 내셔널 갤러리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는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의 김홍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은 동시대 사람이다.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로, 붓 하나 들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세상을 비웃었던 화가이다. 상류사회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최신식 결혼’이라는 연작 6점이 대표적이며 ‘최신식 결혼-결혼식 후’가 가장 유명하다. 이 작품에는 몰락한 귀족과 부유한 상인의 딸, 그리고 그들의 집사가 등장한다. 결혼식 이후의 장면을 담았는데, 어지러운 실내 풍경은 밤새 파티가 열렸음을 알려준다. 기지개를 켜는 신부는 돈 많은 아버지가 지참금으로 산 멋진 신랑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반면, 방탕한 귀족 출신의 신랑은 지치고 어두운 표정이다. 마치 밤새 홍등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피곤에 지쳐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벽에 걸린 시계는 벌써 12시가 넘었음을 보여준다. 강아지는 주인의 겉옷 주머니에서 여자의 실내용 레이스 모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명백히 혼외정사를 암시하는 증거다. 왼쪽으로 빠지고 있는 사람은 집사인데, 그는 난장판이 된 집안 꼴을 보고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듯한 모습이다. 집사는 겨드랑이에 장부를 끼고, 한손에는 청구서와 영수증 다발을 움켜쥔 채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방을 나서고 있다. 등장인물과 배경 모두 이 도리 없는 계약결혼을 풍자하고 있다.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에서는 큐피트가 폐허 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맨틀피스(벽난로 위의 장식용 선반)에 놓여 있는 조각상의 코는 깨져 있는데, 이는 남성의 성 불능을 상징한다.

 

 

 

가슴에 대한 예찬, 데콜테

헨리 로버트 몰랜드, <가면을 벗은 수녀>, 캔버스에 유채, 1769년, 런던 리즈 미술관

 

로코코풍 회화에는 대부분 가슴에 대한 찬미가 등장하고, 화가들은 가슴을 노출시킨 미인을 즐겨 그렸다. 이 시대엔 가슴은 어떻게든 노출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좀 더 크고 탐스러워 보이기 위해 가슴은 코르셋 위로 하염없이 올라갔다. 당시 여자들은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어깨와 가슴을 드러낸 ‘데콜테(Decollete)’를 자랑하기 위해 교회에 갔다. 남자에게 가슴을 보이고 싶으면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공쿠르 형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그대로 본뜬 모형도 남아 있다고 한다. 어느날 궁전에 모인 귀부인들 사이에서 누구의 가슴이 가장 아름다운가를 얘기하다 만장일치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일등을 주었고 그녀는 고귀한 경연을 기념하기 위해 가슴을 석고로 떠서 모형을 만드는 일을 허락했다는 소문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인생이란 짧은 여행에 불과하므로, 될 수 있는 한 재미있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패션 회화’의 탄생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캔버스에 유채, 81X64cm, 1767년, 런던 윌리스 컬렉션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면서 사적 공간의 치장과 장식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상용품까지 예술 수준으로 승화시켰다. 로코코 시대의 유명 화가들은 업무용 서류, 명함, 광고, 계산서를 만들고 간판을 그리기도 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화가가 디자이너를 겸업한 셈이다. 이런 귀족과 부르주아 문화 속에 화가들은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패션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귀족, 궁정 사람들, 도시 사람들이 살롱, 궁전, 야외 등에서 담소하거나 유희하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유사한 그림이다. 그런 그림 덕에 우리는 그 시대의 패션 트렌드와 연애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어떤 귀족의 초대로 방문한 별장에서 애첩은 그네를 타고 자신은 그 여자의 발을 보고 있는 있는 장면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림 속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시종은 어쩌면 여자의 남편이라는 설도 있다. 남편이 오히려 기둥서방으로 전락, 아내의 뒤꽁무니에서 머슴 같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무능한 존재로 그려진 것이다. 이렇게 그의 그림은 만연했던 유부녀들의 외도 뒤에는 그것을 묵인한 남편들이 있었다는 풍자적 구도가 드러나 있다. 당시 패션 회화는 지금의 광고 같은 효과를 지녔다. 현실을 외면한 채 허구적이며 허영심을 조장하는 모습만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귀족 계급의 의무, 책임, 욕망 등은 배제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은 상류층의 유쾌하고 초연한 일면만 보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악덕, 절제, 쾌락을 상징하는 음식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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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플레겔, <사슴벌레가 있는 생선 정물>, 나무판에 유채, 24X36cm, 1635,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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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칼프, <성 세바스찬 아처스 길드의 뿔잔, 바닷가재, 그리고 유리잔이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채, 86.4X102,2cm, 런런 내셔널 갤러리
 

음식 정물화는 꽃 정물화와는 상반되게 그로테스크하다. 그림 속 고깃덩어리는 마치 우리 인간처럼 느껴진다. 육식의 유혹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는 자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정물화가인 게오르크 플레겔(Georg Flegel, 1566~1638)은 검소한 식사를 나타내는 파를 식탁 위에 놓음으로써 금욕과 절식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냈다. 당시 네덜란드인이 생각했던 절제는 적은 것을 가지고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뜻했다. 예를 들면, 성욕의 절제는 더 순수하고 완전한 쾌락을 준다는 식이다. 음식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가재와 게 등 갑각류는 ‘선택의 자유’를 나타낸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또한 가재는 겉과 속이 다르며, 필요에 따라 지상이나 물속 어디든지 적응하다는 면에서 불성실함과 표리부동함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굴과 홍합은 긍정의 양면성을 뜻한다. 먼저 사순절 음식으로 절식과 관련되므로 긍정적인 의미지만, 부유층이 식욕촉진과 졸음을 유발하기 위해 먹는 사치스런 음식이기 때문이다. 홍합 껍질이 흩어져 있는 그림도 성적인 무절제를 암시한다.

 

미국적 멜랑콜리가 녹아있는 호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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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아침의 태양> 캔버스에 유채, 71.4X101.9cm, 1952년, 오하이오 콜럼버스 미술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만큼 호텔 방을 많이 그린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엔 호텔 방에 있는 여자, 주로 벌거벗고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 창밖을 바라보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에는 그처럼 고독을 자처하는 현대인의 멜랑콜리가 묻어 있다. 특히 호퍼의 작품에서는 호텔과 호텔 방, 주유소와 휴게소, 길이나 철도, 통로, 식당과 카페 등 여행 중 잠시 쉬어가는 장소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등장해도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어 다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호퍼가 그린 모든 그림의 핵심 주제는 ‘외로움’이다. ‘외로움-기다림-그림움’의 삼박자는 산업화와 1차 세계대전, 대공황을 거치면서 황량해진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깃들었고, 호퍼는 이런 정서를 풍경과 인물을 통해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호퍼는 리얼리즘의 아버지 쿠르베 이후 가장 탁월한 미국 리얼리즘 화가로 꼽히는 것이다.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호퍼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여행을 가지 않고도 견딜 만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고갱이 발견한 남태평양의 로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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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셰, <퐁파두르 부인>, 캔버스에 유채, 164X212cm, 1756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폴 고갱은 태생 자체가 여행이다. 태어나자마자 진보 성향의 언론인 부친과 가족을 따라 페루행 배에 몸을 실었고, 그 이후 고갱의 인생은 평생 여행으로 점철되었다. 1891년, 고갱의 타히티행은 유럽의 각종 인류학 서적과 국제적인 식민지 전람회 등을 보고 고안한 ‘열대’라는 문화에 자신의 환상을 혼합시킨 결과물이다. 고갱의 환상은 식민지 국가의 백인 남성이 피식민지 유색 인종 여성에게 갖는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선입견이란 보통 성적 판타지를 뜻한다. 마흔세 살에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은 그곳에서 여러 여인을 애인으로 삼는다. 그는 타히티가 한세기 동안이나 선교활동이 벌어진 곳인데도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가 그다지 바뀌지 않았음을 느끼고 매우 기뻐했다. 고갱이 돈을 주기를 꺼렸던 것이 아니라, 원주민 여자들은 마음만 맞으면 젊음과 아름다움을 두고 유럽식의 계산을 하려 하지 않았다. 성적으로 조숙하고, 자유분방하며, 백인 남자와의 결합을 열렬히 희망하는 원주민 여자들은 그에게 영감 그 자체였다. 웬만한 타히티 여인들은 누드 모델이 되는 것도 꺼리지 않았고, 고갱은 타히티 여인들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루이 15세의 애첩, 정권의 핵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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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망고를 들고 있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72.7X44.5cm 1892, 볼티모어 미술관

 

18세기 사교계의 핵심이었던 살롱 문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로 퐁파두르 부인(Manquise Ponpadour)을 꼽을 수 있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그녀는 ‘왕관없는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녀의 후원이 없었다면 로코코 예술의 절정은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그녀는 단순한 애첩을 넘어 왕의 비서실장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어머니 역할을 했다. 퐁파두르 부인이 한 가장 멋진 일은 문학과 철학의 후원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루소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계몽주의 산물로 태어난 백과사전은 지식 권력을 일반화하는 매개체가 되어 결국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는 데 일조했다. 시간이 갈수록 왕은 그녀에게 아예 정권을 맡기고 주색잡기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1756년 베르사유 조약을 이끌어 내고, 7년 전쟁을 치렀다. 퐁파두르 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결혼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신흥 국가인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해 평소 앙숙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외교를 맺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정략적으로 결혼시킨 것이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 프랑수아 부셰를 후원했던 그녀는 그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부셰의 작품을 보면 화려하고 우아한 그녀만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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