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인 시인 / 비오는 날의 산조(散調)
누가 오시는가
뉘 우현금(雨絃琴)을 뜯으며 오시는가
서천으로부터 찰방찰방 건너오고 계시는가
파문 지는 둥근 발소리 물 내 난다
깊어지다 빨라지다 이윽고 숨을 죽이듯 적막하게 닿는 비
주렴으로 선 수직의 현들 있다
빼곡히 선체로 목이 메는 것들이 있다
바람의 손가락이 뜯고 있을 비의 현琴, 비의 선율, 천상에서 지상까지 이어지는 것은
침묵 다음의 음계다. 흐느끼듯 머금듯 삼켜지는 구음
솨-스스흐 스흑스흑 스스
무흐 무흐 무흐흐 무흐
세상을 주류하는 구름아 바람아
죄다 여기 빗속에 너희 울음을 묻은 것이냐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강물은 강물소리로 늪은 늪의 소리 결로
어린 영혼을 쓰다듬듯
세상을 염송하듯 듣는 이나 들으며 빗소리는 이어지고 풀어지고 가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내리지 못한 비
투루판에서 백년 삼켜진 빗소리
아-화염산에서 천년 머금기만 했던 빗소리의 기억으로
짓소리* 홑소리* 끄을며 끊으며 범패 울듯 범패 음유하듯
침묵도 소리도 아닌 소리로 남의 심금을 뜯어내고 있다
비의 숲을 내다보는 직박구리도 제 노랠 잊고 빗소리에 젖어있다
산밭 지나 싸리밭 지나
은사시 나뭇잎들 짚으며
미뉴엣 풍으로 닿는 작은 음표들의 발자국
흩날리다 그치다 다시 날리는 울기 좋은 날의 우현금 소리를 아시는가
들어본 적 있으시던가
살구나무 가지 곁에 선 고요도 무채색으로 빗소리에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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