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소설로 분류되지만 일반적인 소설에서와 같은 줄거리 전개가 없고 일기형식의 짤막한 글이나 편지, 그 밖의 여러 상념들이 각각의 단락을 이루며 나열되어 있는데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말테의 수기` 주요 줄거리
감수성이 예민한 28세의 청년 말테는 부모를 잃고 가족하나 없는 고독한 처지입니다. 그는 생계를 위하여 고향인 덴마크를 떠나 파리로 갑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에 비치는 파리의 모습은 불안과 죽음의 형태로 비치고 모든 풍경은 음울하게 그려지는데 그 이유는 말테 자신의 내면이 고독하고 우울하기 때문이겠지요.
말테가 떠올리는 유년 시절은 유서 깊은 가문의 저택 속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자라는 유약하고 예민한 소년의 모습입니다. 그 시절에 어린 말테는 곧잘 열병을 앓았으며 환각을 보곤 했습니다. 이런 증상은 청년이 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말테는 아직도 환각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괴로워합니다. 한편으로 그는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늘 파리 시내를 홀로 헤매기도 하지요.
내성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그는 세속적 차원의 사랑을 포기함으로써만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 등 특이한 애정관을 품고 있습니다. 수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테는 세상의 그 누구도 자기를 사랑할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대한 모든 애정을 끊고 오직 신의 사랑만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러나 하느님은 아직 좀처럼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그의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작품 알기
릴케는 이 소설을 꼬박 6년 동안의 노력을 기울여 썼다고 합니다. 1904년에 로마에서 쓰기 시작해서 1910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완성했지만 상징적 차원에서 그의 `파리 체류 시대`가 끝난 것은 이 작품이 완성되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테의 수기`는 형식상의 독특함 때문만이 아니라 릴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작품입니다.
말테가 회상하는 유년 시절은 릴케 자신의 유년 시절과 아주 비슷합니다. 아들에게 죽은 딸을 대신하려 한 병적인 어머니와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아들을 통해 실현하려 한 아버지 사이에서 지극히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릴케가 말테의 회상을 통해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릴케가 말테의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을 되짚어 그려 보려 한 시도인지도 모릅니다.
또 릴케는 파리 체류 시절의 극심한 불안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 유년 학교를 억지로 다녔던 시절의 불안과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파리를 떠나 로마와 라이프치히에서 이 작품을 썼지만 고통스러운 과거를 작품 창작을 통해 끝없이 떠올리는 행위를 통해서 그가 극복하려 한 것은 바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파리 체류 시절의 불안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에 담긴 어둡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실은 이렇게 극복을 위한 시도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말테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도든 것이 바뀔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릴케 자신도 이 작품에 그려진 끔찍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서술 속에서 자기 내면에 대한 상처를 치료할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테의 수기`를 표면의 비관적 서술과 정반대 방향에서 읽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릴케(1875~1926)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1875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의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속한 지방도시로서 소수의 독일인이 지배하고 있었고 릴케는 이곳의 소시민적 독일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으로 출세하고자 하였으나 병 때문에 포기하고 철도 회사 관리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부유한 가문의 출신으로 허영심이 강하고 재물과 권세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릴케보다 먼저 태어난 딸이 일찍 죽게 되자 딸 대신 릴케를 딸처럼 키워 어린 시절의 릴케는 머리를 땋아 내리고 치마를 입기도 했으며 또래의 남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약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릴케의 부모가 별거하게 되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릴케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많았습니다. 1886년 릴케가 열한 살 되던 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학교에 입학했지만 유약하고 예민했던 그는 1년을 조금 넘기고 중퇴를 했습니다.
1895년 그가 21세 되던 해 프라하를 떠나 뮌헨 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896년 뮌헨에서 연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기 속에 잠재한 시인의 자질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살로메는 그녀의 회고록에서 릴케의 불행했던 유년기가 그의 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기록했습니다.
릴케는 살로메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러시아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길에서 톨스토이를 만납니다. 릴케의 시 경향은 톨스토이와의 만남에서 받은 자극과 관련이 있습니다. 1902년 릴케는 혼자 떠난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게 되고 `신시집`에서 로댕이 돌에 모든 것을 새긴 것처럼 그도 언어에 모든 것을 새겨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세밀하게 표현하는 언어적 조형물을 창조하려 한 것입니다.
릴케는 1910년에 `말테의 수기`를 발표했습니다. 이즈음에 그는 로댕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고 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으며 파리에서 홀로 고독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존재론적인 고민에 빠져 들었고 고독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말테의 수기`는 이런 내적 성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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