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일 21세기가 시작되던 첫날 국제 펜 본부(회장 호메로 아리디스)는 사회주의를 포함해 94개 국의 기라성 같은 회원국 문인들로부터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선정하게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문장을 가장 위대한 문장으로 뽑은 문인들은 그 이유를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 혹은 신비로 가득 찬 문장’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이처럼 힘차고 확신에 찬 선언을 나도 모릅니다. 인간이 터득할 수 없는 무한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말씀, 창조의 영원한 파노라마의 시초, 한없이 되풀이하여 외우고 싶은 생명의 근원의 말씀…
“And the earth was formless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surface of the water”(창 1:2).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이루려는 새벽의 첫 나팔 소리, 그 나팔 소리를 따라 빛과 어둠이 만들어지고 형체가 없던 하늘과 땅의 만물이 형체를 갖추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영원히 복 주고 사랑하고 싶은 사랑의 대상, 그와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그를 배반하고 떠나기를 일삼는 그의 피조물, 그를 멀리 떠난 인간을 애타게 찾으시고 용서하며 인간과의 관계의 회복을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짝사랑의 기록이 아닌지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대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대와 나를 향하신 그분의 짝사랑 순애보, 그 엄청난 희생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 속에 내가 있습니다. 그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의 신비 안에 있습니다.
애벌레 속에도 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오묘한 생명 가진 것의 비밀
그대와 나 어떠한 존재이기에…
생각의 깊은 오솔길로 들어가면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이 지극한 인간의 존엄을 그 누가 부정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짐승과 벌레와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한없이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만드시고 그의 사랑이 영원한 숨결로 생명을 주셨다는 이 끝없이 경이로운 선언을 당신이 행여 부정하다니…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가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스스로 어둠 속으로 추락하여 공포에 떠는 아담을 애타게 찾아오신 그 분, 그 때 그 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얼마나 아리고 안타까웠으면 이틀 날까지 기다리지 못하시고…
그리고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그의 여인 하와와 즐기시며 미래의 수많은 아들딸들의 빛나는 모습을 그리시던 그분의 행복에 겨우신 온화하심에 겹쳐 괴로움에 일그러지셨던 그분의 모습을. 그리고 최초의 그 사람, 최초의 그 사귐을 회복하시려는 그분의 간절하신 소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너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것은 오늘도 인간을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너의 고통이 너의 절망이 얼마나 크고 깊냐? 이 물음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을 향해 내미시는 그분의 용서와 이해와 구원의 손길. 그대의 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달려오기를 원하시는. 저 문 밖에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생명의 가득 찬 선물을 안고.
이 물음은 또한 우리를 향해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정직하고 성실한 물음이기도.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다리는
내 예림의 사랑이여
내 길고 어두웠던 겨울의
들을 벗어나
내 검은 너울을 벗고
봄이 오는 언덕을 향해
달려서 나오기를
찬란한 생명의 잔치를 위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문장을 가장 위대한 문장으로 뽑은 문인들은 그 이유를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 혹은 신비로 가득 찬 문장’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이처럼 힘차고 확신에 찬 선언을 나도 모릅니다. 인간이 터득할 수 없는 무한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말씀, 창조의 영원한 파노라마의 시초, 한없이 되풀이하여 외우고 싶은 생명의 근원의 말씀…
“And the earth was formless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surface of the water”(창 1:2).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이루려는 새벽의 첫 나팔 소리, 그 나팔 소리를 따라 빛과 어둠이 만들어지고 형체가 없던 하늘과 땅의 만물이 형체를 갖추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영원히 복 주고 사랑하고 싶은 사랑의 대상, 그와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그를 배반하고 떠나기를 일삼는 그의 피조물, 그를 멀리 떠난 인간을 애타게 찾으시고 용서하며 인간과의 관계의 회복을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짝사랑의 기록이 아닌지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대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대와 나를 향하신 그분의 짝사랑 순애보, 그 엄청난 희생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 속에 내가 있습니다. 그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의 신비 안에 있습니다.
애벌레 속에도 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오묘한 생명 가진 것의 비밀
그대와 나 어떠한 존재이기에…
생각의 깊은 오솔길로 들어가면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이 지극한 인간의 존엄을 그 누가 부정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짐승과 벌레와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한없이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만드시고 그의 사랑이 영원한 숨결로 생명을 주셨다는 이 끝없이 경이로운 선언을 당신이 행여 부정하다니…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가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스스로 어둠 속으로 추락하여 공포에 떠는 아담을 애타게 찾아오신 그 분, 그 때 그 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얼마나 아리고 안타까웠으면 이틀 날까지 기다리지 못하시고…
그리고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그의 여인 하와와 즐기시며 미래의 수많은 아들딸들의 빛나는 모습을 그리시던 그분의 행복에 겨우신 온화하심에 겹쳐 괴로움에 일그러지셨던 그분의 모습을. 그리고 최초의 그 사람, 최초의 그 사귐을 회복하시려는 그분의 간절하신 소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너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것은 오늘도 인간을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너의 고통이 너의 절망이 얼마나 크고 깊냐? 이 물음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을 향해 내미시는 그분의 용서와 이해와 구원의 손길. 그대의 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달려오기를 원하시는. 저 문 밖에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생명의 가득 찬 선물을 안고.
이 물음은 또한 우리를 향해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정직하고 성실한 물음이기도.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다리는
내 예림의 사랑이여
내 길고 어두웠던 겨울의
들을 벗어나
내 검은 너울을 벗고
봄이 오는 언덕을 향해
달려서 나오기를
찬란한 생명의 잔치를 위해.
곽상희 시인
1970년대 말부터 미주 한인 언론 등에 교육, 사회, 문화, 시사 칼럼 집필. 1980년대부터 뉴욕 문학인을 위한 문학 모임 활동,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미주, 캐나다, 스페인, 중국, 영국, 비엔나 등에서 시 낭송, 패널리스트로서 토론 참석 강연 및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한국 문학과 한국 문화를 교포 사회와 타 문화권에 소개(Korean American Literary Association 뉴욕 주 문화국 등록(1984~)), 올림포에트리(Olympoetry) 시인 피선(스페인-1993년), 제1회 박남수 문학상 대상(동산 재단 주관) 외 국제 여류 시인상(영국), 국제우수시인상(UPLI-국제시인협회 주관) 등 다수 수상, 국제 시인인명사전에 등재(영국), 창작 클리닉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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